베어진 시간과 남겨진 죄의식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원주 반계리의 은행나무를 보러 간다. 은행잎이 황금처럼 피어있을 때도 장관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그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과거의 시간과 사람들이 그 나무 안에 보존되고 있을 거 같다는 기분이 든다. 영화 ‘기차의 꿈’에서도 줄곧 나무가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무는 자연이 아니라 시간을 의미한다.
로버트 그레이니어(조엘 에저튼)에게 나무는 별 의미가 없다. 부모님 없이 태어난 해와 날짜도 알지 못하는 그는 애초부터 시간에 관심이 없다. 그에게 나무는 돈벌이고 망각이다. 그는 무엇을 베고 있는지 모른 채 시간을 소비한다. 로버트는 어린 시절 마을에서 중국인들이 쫓겨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함께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가 끌려 나가 건설 중이던 협곡의 철길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일을 방관한다. 관리자는 공사가 끝나고 이 대업의 주인은 우리라고 공언한다. 쫓겨 죽은 사람들은 산업화에서 밀려 나간 이들의 초상이다. 시대에 뒤처지고 발전에서 도태된 사람들. 로버트는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지만, 그 시간 속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범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안 피플스(윌리엄 H.머시)는 긴 시간을 통해 나무를 베는 목적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고속화되는 산업의 발전에서 제외되고 점령하고 사라지는 것들이 자신들에게 똑같이 돌아올 것임을 안다. 안은 500년 된 나무를 베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탈이 난다고 말한다. 젊은 벌목꾼이 앞으로 천년은 더 벨 나무가 있다고 하자, 안은 대답한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는 평생 나무를 베고 떨어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는다. 평생 시간을 베며 살아온 사람의 결말로 이보다 더 직접적인 은유는 없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고 발전은 언제나 약하고 작은 것들을 소비한다. 발전에 배제된 사람은 철길 밑으로 떨어지고 방관한 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죄의식에 빠져든다.
로버트가 벌목을 하러 떠난 사이, 아내 글래디스(펠리시티 존스)와 딸도 그가 벌목을 하러 간 사이, 그러니까 산업화에 매진하러 갔던 순간에 아내와 딸을 산불로 잃는다. 그 산불과 사라진 나무는 그의 가정에 매겨진 시간을 의미한다. 발전을 위해 비워진 자리. 딸과 아내가 로버트를 가장 필요로 하던 때, 로버트는 숲에서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것은 가정을 위해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선택에서 가해자는 없고 모두가 피해자다. 그리고 한 순간 그들의 모든 시간은 불타 사라진다.
산림청 직원 클레어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보존’하는 인물이다. 또한 그녀는 로버트의 ‘치유’를 상징한다. 그녀를 만난 뒤 로버트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말’을 그녀에게 고백한다. 어느 날은 슬픔이 자신을 집어삼키고, 다른 날은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가족들이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자신은 그 자리에 없었다고. 숲에서 아내와 딸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만 고개를 차마 돌리지 못하겠다고. 자신 때문에 놀라 달아날까 봐. 나무처럼 말이 없던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의 기다림과 슬픔의 이유를 인정한다. 클레어는 말한다. 죽은 나무가 살아 있는 나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 하나가 강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숲 속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조차.
어느 밤, 로버트는 다리가 부러진 여자아이를 구한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 아이가 돌아온 자신의 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아이의 다리의 부목을 대고 밤새 간호하지만 로버트가 잠든 사이 아이는 창문을 통해 도망친다. 그 아이는 딸에게 주지 못한 사랑과 보살핌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이의 부러진 다리는 부러진 가족의 시간이다. 실제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장면 속에서 로버트는 딸을 보호하고 지켜낸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끝내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와 비로소 작별한다.
가끔 그는 발전된 도시를 찾는다. 괴물이 나온다는 서커스를 보러 들어가지만, 그곳에는 분장한 아이만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한평생 바쳐왔던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허상이었는지를 깨닫고 눈물 흘린다. 노인이 된 로버트는 비행기를 탄다. 비행기는 기차를 넘어서는 산업화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자신 역시 그 산업화의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것을, 오두막의 이방인이 아니라 이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가 비판하는 것은 빠른 발전 그 자체가 아니라 발전을 위해 잘려 나간 것들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태도다. 영화 속 로버트는 나무처럼 묵묵히 그 현실을 목격하고 버텨낸다.
구시대에는 많은 길이 있었다. 그러나 구시대는 저물고 철도는 한 길로만 다닌다. 너무 빠르고 거침이 없다. 그러나 기차에도 꿈이 있다면 구시대의 길을 따라 달리고 싶을 것이다. 모든 것의 연결이 당연했던 그 시절을. 벌목된 시간과 연결에 관한 이야기. 기차의 꿈(2025)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