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근

귀에 대고 말하기

by 슴도치

남자는 소리를 질렀다. 여자는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봤다. 남자가 식탁을 손으로 내리치자 식기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여자는 시선을 돌려 떨어진 식기를 내려다봤다. 그러자 남자는 조금 진정이 된 듯 여자의 손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마치 고정문이 닫히는 것처럼 바닥에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격분한 남자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싸울 것처럼 여자 눈에 삿대질을 갖다 대며 괴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그녀가 바라볼 남자가 창밖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전봇대에 드리워진 그림자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다. 남자는 아예 여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여자를 의자에서 떨어뜨렸다. 놀란 남자는 황급히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여자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제야 여자는 귓속말을 할 것처럼 고개를 돌리더니 남자의 귀를 콱 깨물어버렸다.









폭력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고성과 침묵, 육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 결국 상대방을 괴롭히고 그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같다.

관계에서 가장 힘든 건 상대의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분노는 적어도 상대를 향해있다. 감정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무관심은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다. 창 밖만 볼뿐이다.


분노는 상승한다. 그러나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그 둘의 폭력성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모두 상대를 지워버리고자 한다. 소리가 커지면 침묵도 깊어진다. 그것은 무형의 난투극과 같다. 아무리 방어를 해도 공격만 당할 뿐이다.


관계는 소통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감정이라도, 감정이 통하지 않으면 시선이라도 마주쳐야 한다. 그러나 소리 지르는 사람과 창 밖을 바라보는 사람은 한 공간에 있을 뿐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방법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언어도 다르다.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가장 폭력적인 감정일 수 있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폭력성이 깔려있다.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그래서 위험하다. 조금 차가운 사랑이 그래서 더 오래간다. 당신 귀에 대고 말할 것들이 많은 날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