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출렁이는 마음과
다시 방향을 돌리는 일에 대하여
출렁출렁하였다.
내 몸에서 색이 모조리 빠져나간 것 같았다.
망망대해에 있었다.
나는 어쩐지 울고 난 뒤에 마음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슬프지도,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닌
이다음에 올 파도 같은 울음을 기다리는 어부의 심정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내 몸에서 흘러 나간 색이 바다를 물들였다.
여러 색이었지만 모두 섞인 뒤에는 아무것도 아닌 색이 되었다.
출렁출렁하였다.
나는 오래도록 멀미를 한 사람 같았다.
쪽배 같은 것이 내 세상이고
그물을 걷어도 그 물에서는 아무것도 끌려 올라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모터에 시동을 걸었다.
죽은 배가 막 살아난 사람처럼 부르르 떨었다.
이 배가 처음에 무슨 색이었더라.
육지 쪽으로 배를 돌리는데
팍 하고 소나기가 내렸다.
* 예전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경비가 모자랐는지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커다란 배를 타고 돌아왔다. 우리는 갑판의 가장 밑에 방을 배정받았다. 연수원이나 예배당 같은 넓은 공간이었는데 침구류를 깔고 사람들이 각자 누워 지내는 곳이었다. 이용하는 이들도 단순한 여행객들이 아닌 대부분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모르는 이들과 누워 밤을 지냈다. 그러다가 손바닥만 한 창에 난 바다를 바라보며 이 배가 침몰하면 여기부터 물이 차오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감정이 모두 소모된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화를 내다가 혹은 울다가 부정적인 감정을 모조리 방출하고 방전된 것 같은 기분. 어떤 사람에게는 반복적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 그를 사랑할수록, 가까울수록 더 그렇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참을 수 있었던 말들이 가까운 이에게는 너무 쉽게 터진다.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더 무례하다. 그리고 그렇게 화를 내다보면 나는 곧잘 무엇 때문에 화를 냈었는가 하는 것도 잊게 된다. 화라는 것은 불길 같아서 계속해서 이 일과 저 일로 옮겨 붙게 되면. 결국 우습게도 최초의 발화점은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한국으로 가는 배 안에는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도 함께였다. 단체로 어학연수를 갔던 이들 모두 가난한 학생들이었다. 우리는 미지의 장소에 좌초된 미아들처럼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섞여서 잠을 잤다. 경계심으로 가득 찬 여자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치기 어린 계획이었다. 나는 의도적인 우연을 바탕으로 짝사랑하던 여자 옆에서 잠을 잤는데 그 뜬 눈으로 지새운 밤이 지금도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나 또한 불침범을 선다는 핑계로 잠도 안 자고 곤히 잠을 자고 있던 그녀의 이마와 콧잔등, 말간 볼을 실컷 들여다보았다. 바야흐로 사랑이었다.
화를 내고 난 뒤에는 후련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후회가 동반한다. 게다가 화를 낸 대상이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 후회는 더욱 농밀해진다. 오래 수영을 한 사람처럼 결국 노곤해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그때 그 배 안에 밤새 지켜보던 그 말간 얼굴처럼 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정말 그럴 수야 없겠지만 좀 덜 심한 말, 좀 덜 미운 말을 골라했을 것이다.
화를 낸 사람의 마음은 출렁출렁한다. 멀미를 한 사람처럼 중심도 잘 잡지 못한다. 화를 내고 난 뒤에는 빈 껍데기 밖에 안 남는다. 그 껍데기는 얇고 약해서 금방 부서지고 만다. 그런 것에서는 무엇도 살 수가 없다. 그럴 때는 배를 돌리자. 계속 가고 있던 잘못된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그리고 내가 알던 그 말간 얼굴을 대하듯, 그 방법뿐이 없다. 저질러진 불을 끄고. 우리가 다시 우리라는 육지에 다다를 방법은.
미안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