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2000), 어디까지 말했더라?

선택된 진실

by 슴도치


기억이란 과거를 현재로 가져오는 작업이다. 그 과정 속에서 기억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기억도 완벽하지 않다. 색, 사람, 날씨 등의 사실은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고 10~15분이 지나면 지금까지 있던 일을 잊어버린다. 그의 마지막 기억은 아내가 괴인에게 죽어가는 장면이다. 그때부터 삶의 목표는 오로지 범인을 찾아 복수하는 것뿐이다.


영화의 방향은 두 가지로 흘러간다. 중간중간 단편적으로 나오는 흑백 장면은 시간상 영화의 가장 시작점이고 정방향으로 흐른다. 나머지 장면은 역방향이며 관객도 레너드처럼 잃어버린 기억을 함께 찾아간다.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레너드의 해결책은 사진과 메모, 문신이다. 그는 기억보다 그것이 더 정확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또한 기억만큼 조작되기 쉽다. 그는 계속해서 잊고 끝없이 기록한다.


레너드의 직업이 보험 조사관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 직업조차 최초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병을 앓고 있던 새미 젠킨스라는 인물을 조사했었다. 그리고 그를 믿지 않았다. 레너드는 그와 달리 자신은 체계가 있고 세상에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믿어주지 않는 신세는 같다. 그는 보험 조사관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 치밀하게 조사하고 추리한다. 테디(조 판토리아노)가 레너드에게 셜록이라고 부르는 건 농담이 아니라 레너드의 인생의 목적이 기억할 수 없는 것을 수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테디는 레너드에게 '너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레너드는 자신의 이름과 출생지를 말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레너드일 뿐이다. 기억이란 인생 그 자체이며 관점에 따라서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레너드는 ‘아무도’ 아니다. 그는 복수라는 목적성에 매몰된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의 잘못과 결핍을 덮어두고 조작한다. 일부러 맞출 수 없는 퍼즐 판을 만들어두고 퍼즐 조각을 찾아간다. 그는 계속해서 낯선 지역에 내동댕이 처지는 탐험가처럼 생존해갈뿐이다.


이 영화는 진실 자체보다 ‘믿고 싶은’ 진실에 초점을 둔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도 믿고 싶도록 계속해서 재구성되는지 모른다. 레너드가 아내를 죽였든, 새미가 레너드이든, 복수가 이미 끝났든 그 무엇도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정확한 건 레너드가 자신이 선택한 진실을 믿기로 결심했을 때, 이 영화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는 생존하기 위해 끝없이 복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든다. 존, G라는 흔한 이름처럼 복수라는 엔진을 돌리기 위한 동기는 많고, 슬픔과 살인은 그 엔진의 연료가 된다. 자기기만은 사실을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거짓 정보를 만들고 속인다. 그는 진실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일부러 잊는 사람이다.


메멘토(Memento)는 라틴어로 “기억하라”라는 의미다. 제목부터 아이러니다. 레너드는 기억하려고 계속해서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기지만, 사실 그는 기억하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그는 끝없이 기억하고, 망각하고, 조작하고, 조작당한다. 그는 추적자이며 도망자다. 레너드는 말한다. 마음 밖의 세상을 봐야 한다고. 그는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믿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외부의 사실을 수집하고 신뢰한다. 기억은 못할지라도 그것들을 이용해 자신의 행동에 의미가 있었다고 믿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그는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아니다. 누군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레너드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이 아니라 행동의 흔적에서 찾는다. 그의 기록과 사진, 문신은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남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증거물이다.


이 영화는 기억에 의해 한 사람이 정의된다면 계속해서 기억을 잃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진실의 기억과 왜곡.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아도 평소 우리 또한 반복하고 있는 일이다. 인간은 사실보다 믿고 싶은 이야기를 더욱 좋아한다. 망각과 자기기만, 선택한 진실에 대해.. 어, 그러니까


어디까지 말했더라?


기억이란 과거를 현재로 가져오는 작업이다. 그 과정 속에서 기억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