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의 얼굴
사랑의 유통기한은 보통 2년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연애 초기 열정적인 감정이 점차 사그라드는 기간을 뜻한다. 하지만 길어야 2년밖에 안 되는 시간은 우리의 삶을 얼마나 송두리째 흔드는가. 연애는 보통 사랑의 감정으로 시작되는 모든 관계를 말한다. 순수한 시절의 연애에는 목적이 없다. 이유가 있다면 ‘좋아서’, ‘끌려서’ 정도다. 그런데 그 연애에 목적이 있다면 무엇일까? 내가 저 사람에게 얻어 내야 할 것이 명확하다면? 이 영화는 그 일상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이유림(박해일) 고등학교 교사다. 그는 새로 교생실습 온 최홍(강해정)이 마음에 든다. 이때부터 이유림은 최홍과 연애가 하고 싶다. 그 연애의 목적은 꽤 뚜렷하다. ‘당신과 자고 싶다’ 그 노골적이고 당당한 요구는 최홍에게 거부-불편-방어-끌림이라는 감정의 단계를 만든다. 보통의 연애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육체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상대의 외모와 관심사, 가치관 등이 설렘이라는 감정 아래서 조사, 평가된다. 그리고 그 보고서가 합격선에 근접하다면 연애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의 연애는 육체적인 관계 이후에 서로에 대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 두 가지 연애 시작의 선후가 달라도 어차피 결과는 같다. 만나던가, 헤어지던가. 유림의 연애는 육체적 끌림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욕망에 묶여 달려간다. 사랑이 없어도 욕망만으로 연애는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알고자 마음먹었을 때, 유림에게도 욕망 외에 다른 감정이 싹튼다.
최홍의 연애는 초반에 목적이 없다. 그녀는 거부하고 혐오할 뿐이다. 그녀에게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직장 선택도 모두 안정적이고 편한 것이 기준이다. 그것은 그녀의 과거와도 관련이 있다. 그녀는 대학 때 유부남 조교와 불륜관계에 있었고, 삐뚤어진 사랑은 매도당하고 버림받는다. 그 기억은 그녀에게 연애의 목적이 사랑이 아니라는 걸 각인시켰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므로 그녀의 사랑 목록에는 현재의 남자 친구도, 직업관도 없다.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집의 문을 잠그고, 도어체인을 걸어놓을 뿐이다. 그녀가 유림을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대책 없이 문을 잠그고 끝까지 방어만 하지만, 어느새 유림의 욕망에 동화되어 문을 열고 도어체인만 걸어둔 채 관계를 이어간다. 홍은 유림의 욕망에 대해 모른 척하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부터가 이미 과거의 연애의 목적에 의해 상처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계의 갈증이 최고점으로 치달은 이후 그녀 또한 유림에게 ‘함께 자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감정의 밑바닥을 봐야 상대를 신뢰하는 유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고백의 목적은 섹스가 아니라 마음의 치유다. 홍은 유림과 있을 때 숙면을 할 수 있다고, 당신에게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한다. 그녀의 마음은 자신과 비슷한 연애의 목적을 경험한 자에게만 열릴 수 있도록 작동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들의 비밀이 탄로 났을 때도, 그 전과 비슷한 결과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는 거짓을 폭로함으로 유림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 만들며, 자신이 예전에 해야 할 행동을 유림을 통해 해소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그와의 연애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유림과 홍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고 모든 연애는 비슷한 역할을 돌아가며 한다. 보통의 영화는 사랑-갈등-화해의 구조이지만 이 영화는 욕망-사랑-갈등의 구조다. 결말 또한 열린 결말이기 때문에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목적에 대해 솔직해졌을 것이다.
영화는 전문 배우나 인위적인 세트장이 아닌 학생과 교무실, 교실 등으로 꾸밈없이 생활의 디테일을 살린다. 학생들이 운동장을 달리고 교실에서 시험을 보고 불량 학생들이 아지트에서 담배를 피운다. 교무실의 선생님들도 회의를 하고 식당에서 회식을 한다. 이런 장면들은 서사의 중심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현실적인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비서사적 컷(non-narrative shots)은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넣는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몰래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로 찍혀있는데, 그래서 등장인물의 연애가 더 불편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이 영화의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유림과 홍의 관계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 속의 한 장면이라는 점 말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권력의 위계와 성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도 있는 영화다. 표면 상 서로 애인이 있는 채로 현직 교사와 교생이 불륜을 저지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들의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혹독한 대가를 치렀고 자신들의 연애에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의 연애가 성공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실패의 시작일까? 영화는 그 결말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과거를 딛고 또 다른 시작을 했을 거라는 암시를 옅은 미소로 보여준다. 사랑과 욕망은 어쩌면 다른 가면을 쓴 같은 얼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단지 2년의 유통기한인 사랑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 하나의 목적일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 목적이 있든 없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 근데, 당신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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