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키 오브 브라더스, 군인 없는 전쟁영화
실제 피키 블라인더스는 1890년대에 활발하게 행동한 갱단이다. 드라마는 이들을 훨씬 더 세련되고 강력한 존재로 격상시켰지만 실제 그들의 모습은 소매치기와 폭행을 일삼던 거리의 부랑자 집단에 가까웠다. 면도날 모자(The Peaked Cap) 또한 모자챙에 면도날을 박아 무기로 썼다는 설정이 드라마의 상징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근거가 희박하다. 실제로는 '피크(Peaked)' 스타일의 모자를 눌러써서 눈을 가리는 그들의 패션 스타일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기나긴 시리즈의 주인공 토마스 셸비(킬리언 머피)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다. 그는 1차 세계 대전에 형제들과 함께 땅굴부대(Tunneller)에 자원한다. 적군의 참호 밑까지 몰래 땅굴을 파 폭약을 설치하는 일이 임무였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숨소리와 벽 너머 적의 삽질 소리에만 집중해야 했다. 토미는 극 중 대부분 말끔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모습으로 나오지만, 때에 따라 진흙투성이가 되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그것은 그가 아무리 과거를 청산하려고 해도, 아직도 그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좁고 어두운 땅굴은 언제 무너져 매몰될지 모르는 공포의 공간이다. 토미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적인 감정을 모두 지워야 했다. 그는 땅굴 속에서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었고, 지상으로 올라온 뒤에도 그 차가운 시체의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드라마 곳곳에서 토미는 벽을 치는 삽질 소리를 듣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무의식은 여전히 1917년의 프랑스 지하 땅굴에 갇혀있다. 그에게 평화는 공격 직전에 정적일 뿐이며 진정한 안식이 아니다.
토마스는 가문의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권력의 영토를 넓힌다. 하지만 그가 사업을 확장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은 사실 더 깊고 견고한 땅굴을 파는 행위와 같다. 안전해지기 위해 더 깊이 파 내려가지만, 깊어질수록 지상의 햇살(인간성)과는 멀어지고 마는 굴레. 그는 가족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모든 것은 생존과 전장을 위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을 도구화하며 조종한다.
그는 땅굴 속에서 전략을 짜고 무너질 각도를 계산하던 설계자였다. 전쟁이 끝난 후 지상에서도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변수를 제거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만든 완벽한 땅굴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다. 토미에게 삶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계속 파내야 하는 것이다. 멈추는 순간, 매몰될 것이라는 폐쇄적인 공포가 그를 계속해서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토마스는 그 지하의 진장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평생 흙을 몸에 묻힌 채 살아간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이미 죽었어. 그 이후의 삶은 모두 덤이야."
이 대사야말로 토미가 왜 그토록 무모하게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지, 그리고 평범한 행복 앞에서 그토록 어색하고 서먹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땅굴을 파는 행위와 피와 살육의 전장에서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병사다.
아서 셸비(폴 앤더슨)는 토마스만큼이나 시리즈의 개성을 더해주는 인물이다. 토마스가 전쟁의 상흔을 외면한 '지하의 비명'이라면 아서는 길거리에서 찢어지게 우는 ‘지상의 비명’이다. 그는 토마스가 끝까지 숨기고 싶어 했던 폭력으로 인해 망가진 파열된 원형이다. 토마스가 전쟁의 흙을 털어내고 '비즈니스'라는 가상의 성벽을 쌓아 올릴 때, 아서는 그 성벽 아래 깔린 축축한 점토(Clay)의 질감을 그대로 유지한다.
아서는 토마스가 차마 내뱉지 못한 울분을 술과 마약,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폭력으로 치환한다. 그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폭력에 굴복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폭력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죄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 감정이 폭력을 포기해야 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토마스가 영혼이 썩어가는 과정을 권력과 수트라는 화려한 수의로 덮을 때, 아서는 자신의 살이 썩어가는 냄새를 맨몸으로 드러낸다. 그는 토마스가 도달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종착지다.
아서는 셸비 가문의 가장 강력한 무기면서 동시에 가장 숨기고 싶은 흉터다. 그는 동생인 토마스를 지휘관으로 모시며 복종하지만, 사실 그것은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 자의 생존 전략이다. 토마스가 아서에게 내리는 명령은 아편 중독자에게 주는 아편과 같다. 토마스가 살아가기 위해 폭력을 버릴 수 없듯, 자신의 형에게마저 폭력이라는 '삶의 이유'를 제공한다. 토마스는 자신과 아서의 모습이 다르지 않음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고 그 점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아서가 종교와 가족(린다)에 매달리며 구원을 갈구할 때, 토마스는 '신은 없다'라고 단정 짓는다.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 모를 아서의 구원을 토마스는 막아선다. 왜냐하면 그는 홀로 전장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고, 총알이 걸린 기능불량의 총을 닦달하듯 아서를 무기화한다.
그러나 아서의 통제 불가능한 모습은 토마스에게 양날의 검이다. 토마스가 전장을 떠나려면 아서라는 망령이 사라져야 가능하다. 아서의 죽음 혹은 소멸은 토마스의 서사가 완성되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토마스는 자신을 과거의 지옥으로 계속 끌어내리는 과거의 증거를 삭제한다. 아서의 괴로움을 볼 때마다 토마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고 있는 클레이 키커(터널병)의 삽질 소리 또한 커지는 것을 느낀다.
아서 셸비는 토마스라는 '완성된 악'의 그림자 속에서, 끝까지 망가진 인간으로 남음으로써 드라마의 비극과 자신의 역할을 완성한다. 그는 얼핏 토마스에 의해 실패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지지만, 인간성을 제거한 토마스와 달리 끝까지 자신의 인간성을 유지한 채 고통스러워한 인물이다. 결국 토마스는 아서를 제거하며 전장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달아난 곳 또한 망자들로 가득한 지옥이다.
그레이스 셸비(애나벨 월리스), 상실된 '낙원'
그레이스는 토마스 셸비가 전쟁에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꿈꾸게 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녀의 노래는 토마스의 귓가에서 울리는 삽질 소리를 멈추게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그녀와 함께할 때 토마스는 비로소 '클레이 키커'가 아닌 평범한 남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와 행복이 가시화될수록 전장이 아닌 곳에서의 불안은 더욱 커지게 된다. 토미는 더욱 크고 확실한 성공을 바라며, 그레이스의 죽음을 촉발시킨다. 그녀의 죽음은 가뜩이나 사라진 토마스의 인간성을 완전히 매몰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녀의 부재에 의해 토마스에게 '행복'은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이 되고, 그는 더욱 가차 없이 권력이라는 땅굴 속으로 자신을 파묻는다.
폴리 그레이(헬렌 맥크로리), 공유된 '수로'
폴리는 토마스가 저지르는 모든 악행과 그 이면의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공유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토마스와 같은 집시의 피를 공유하며, 그가 가진 영적인 불안과 죄책감을 수로의 물결처럼 비춘다. 그녀는 토마스가 독선적인 제왕으로 군림할 때, 유일하게 그의 뺨을 때려 깨울 수 있던 브레이크였다. 폴리는 가문의 사업과 인간적인 도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녀는 사업에 필수 자원인 조카들의 폭력과 힘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지만, 선을 넘지 않도록 조율한다
그녀는 토마스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붙잡는 마지막 '금고지기'였으며, 그녀의 부재는 토마스의 자기 통제력 부재로 이어진다.
에이다 셸비(소피 런들), 최후의 ‘보루'
에이다는 셸비 가문의 피를 가졌으나, 폭력을 끝까지 거부하며 토마스에게 셸비의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폭력과 가까이 있으면서 폭력에 물들지 않을 정도로 주관이 뚜렷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간다. 겉으로만 테토남인 오빠들과 달리, 셸비 가문에서 정신적인 면에서는 으뜸. 에이다는 셸비이면서 셸비라는 이름이 주는 특권과 공포를 혐오하며 토마스가 모든 것을 돈과 권력으로 환산할 때, 여전히 사회적 옳고 그름의 가치를 묻는다. 그녀는 토마스가 세상과 맺는 최후의 혈연적 유대이며 인간성의 보루였다.
토마스가 사랑한 세 명의 여신은 토마스의 인간성을 수호하려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죽음은 토마스를 더욱 완벽한 괴물로 완성시킨다. 토마스는 그레이스를 잃으며 행복을 버렸고, 폴리를 잃으며 자제력을 내던지고, 에이다를 잃으며 자신의 고립을 완성했다. 결국 토마스 셸비는 이 세 여신이 남긴 상처와 기억을 연료 삼아, 넓디넓은 저택의 고독한 집시왕이 된다. 이들 세 여신의 노력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토마스가 마지막 순간 원했던 평화는 이 세 여신이 그의 영혼에 새겨놓은 인간성의 흔적이었을 수도 있다.
피키 블라인더스 '불멸의 남자'라는 원초적인 작명은 그를 찬양하기 위해 만든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는 6시즌 동안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지만 죽지 않는다. 죽고 싶어서 인위적으로 전쟁터를 만든 인간이 끝까지 살아남은 셈. 그러는 동안 그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겪는다. 이길 수 없는 적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의 시체를 밟고 서 있는 토마스는 자신의 차례 또한 돌아오길 빌지만, 집 안은 유령들만 오갈 뿐, 죽음은 아직도 멀다.
극 중에서 그가 유령을 보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 그가 삶을 유령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잊을만하면 떠드는 말처럼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 죽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생과 사의 불분명한 경계선에서 그는 죽음의 비즈니스맨이다. 여섯 개의 시리즈와 외전격인 완결판. 이 장대한 이야기는 결국 한 편의 전쟁영화다. 지옥을 피하기 위해, 지옥을 만든 자의 결말. 죽지 못하는 불멸의 악마는 죽을 자리를 설계하고 번번이 실패한다. 토마스는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는 형편없는 전략가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아들 듀크 셸비(배리 키오건)에게 비로소 무거운 왕관을 넘긴다. 그것은 아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듀크 또한 폭력과 살인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망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듀크는 다음 왕으로 지목된 공작이 된다. 토마스가 왕관을 내려놓고 찾은 평화는 진짜였을까? 떠나온 지하의 전장을 잊지 못해 지상에 전쟁터를 만든 사람이 바라던 평화는 죽음으로 완성되었을까?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그는 맨 앞에서 두 팔 벌려 죽음을 맞이하려 하지만, 결국 가장 끝에서 죽음을 마중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재처럼 그가 지독한 땅굴에서 벗어나 지상에서 자유로워지길.
네 바퀴의 마차가 불탄다. 집시의 왕이여,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