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오역
찰카통고 믹스텍어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다. 멕시코 오악사카 지역의 이 언어는 성조가 있고 같은 음절이라도 미세한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바뀐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믹스텍어를 쓰는 사람끼리도 마을이 다르면 알아듣지 못한다는데 있다. 바로 옆에서 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우리들처럼. 통역이 있어도 감정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언어란 이해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오해하게 만드는 매개체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는 그 불가능에 가까운 거리에서 시작한다.
주호진(김선호)의 언어는 물의 언어다. 그의 언어는 유려하고 물처럼 형태가 없어서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데 유리하다. 언뜻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느껴지지만 사실 자신과 타인의 진심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언어는 구조적으로 완성되어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미완이다. 물은 적실뿐 담아낼 수가 없다. 그는 오래도록 짝사랑한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문장을 갖추지 못했고,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얻은 상처를 설명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의 문법은 적확하지만, 말하는 어법은 서툴 수밖에 없다.
그는 상처 주는지 모르고 파도처럼 상대를 철썩 때린다. 그는 말하기 전에 구조를 정확하게 배열해야 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차가운 그의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되, 온도마저 전도하지 못한다. 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깊은 곳까지 닿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호진의 언어는 표면을 적실뿐 스며들지 못한다.
차무희의 언어는 불의 언어다. 그녀는 당황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그녀의 언어는 단순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뜨겁다. 그녀는 문법을 계산하지 않고 마음부터 전달한다. 그것은 바람난 연인을 찾으러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언어는 마음이 먼저다. 그러나 그 진심도 솔직하지 못할 때는 소음이 된다.
차무희는 억눌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도라미라는 인격을 만든다. 도라미의 언어는 차무희의 언어보다 더 뜨겁다. 아니, 말보다 행동으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도라미의 언어는 차무희의 언어가 미처 방출하지 못한 열기의 언어다. 그녀는 불길처럼 타오르는 차무희의 잔열이다. 그러므로 도라미 자체는 의지가 없다.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차무희의 욕망에서 비롯되어 있다. 히로에게 키스하고 밤마다 주호진을 불러낸 것은 모두 말하지 못한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녀는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하지만, 버림받길 두려워하므로 정작 사랑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모든 말은 다하면서 정작 자신이 닿아야 할 대상에게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태우지 못한다. 차무희의 언어가 그렇다. 뜨거울수록 정작 중요한 말은 재가 된다.
그녀의 언어는 주호진에게 뜨겁고 주호진의 언어는 차무희에게 차갑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극 중 오래도록 수증기만 만지작거린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온도 속에서.
히로는 바람의 언어다. 그의 언어는 고정되지 않고 이동한다. 차무희에 대한 감정은 호감이었다가 미움이었다가 다시 사랑으로. 응원으로 변한다. 또한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옮겨가는 그의 말 역시 유동적이다. 그의 언어는 멈춰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는 용기가 없었고 겁내던 마음을, 사랑을 알고 포기해 가며 성장시킨다. 사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랑보다 계기였을 수도 있다. 그의 사랑은 안타깝지만 가슴 아프지 않다.
그는 타인의 언어를 빠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 또한 잘 알고 있다. 그의 언어에는 질문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그는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만큼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도 망설임이 없다. 그는 불과 물의 언어 사이의 조연이 아니라 독립적인 자신의 언어를 밀고 나가는 인물이다. 그는 가장 형체가 없으면서 형태가 있는 말을 한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방향이 있다. 히로의 언어가 그렇다. 물처럼 고이지 않고 불처럼 태우지 않는다. 그저 불어오고 지나간다. 그 지나감이 오히려 가장 정직한 언어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만 인물들은 말로만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말이 비어있는 곳을 시각적·음향적 요소로 풀어낸다. 카메라의 호흡, 외국의 풍경보다 김선호 배우와 고윤정 배우라는 영상미. 그 인물 사이의 거리, 넓고 층고가 있는 공간을 잘 이용하면서 언어와 언어 사이 불통의 간극을 시각화한다. 침묵 또한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또 다른 발화 방식으로 작동한다. OST 멈춤의 시간을 정서적으로 연결한다. 말이 없는 장면이 말이 있는 장면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할 때, 이 드라마는 가장 정확해진다.
세상에는 7천 개가 넘는 언어가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말하는 진짜 언어의 개수는 사람만큼이라고 한다. 우리는 종종 같은 말을 해도 믹스텍어처럼 알아듣지 못한다. 언어를 이해한다는 해석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이 드라마는 로맨스를 표방하지만 사람들 간의 언어와 그 해석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정확한 문법과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는 용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각각의 외국이다. 두서없고 엉성한 발음으로 당신이라는 낯선 세계를 성큼성큼 여행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번역이 아니라 감수甘受에 가깝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 그런 결심을 한 사랑은 통역이 없어도 결국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