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오늘은 이별하고 내일 사랑하자고 당신이 말했다. 나는 단호한 발자국 같은 당신 말소리는 따라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타인에게 흉기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벌겋게 달아오른 장난감이든 날이 선 꽃이든. 품 안에 조심히 들고 있지 않으면 쉽게 상처가 나고 마는. 그런 좋은 얼굴을 하고서. 당신은 오늘은 이별하고 내일 사랑하자고 말했다. 마치 영원히 사는 사람처럼. 시간 따위 손짓하면 다가오는 저 택시처럼. 내일 사랑하자고. 그래요. 영원히 사는 건 당신만 해요. 나는 오늘을 살 테니. 언 길을 멀리 걸으며 오늘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따라붙던 나는. 결국 달도 뜨지 않은 바다 위. 두 발을 디디면 꽉 차고 마는 그런 단호한 섬 위에 다다른다. 시커먼 하늘 같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보면. 한 번쯤 별처럼 어여쁜 물고기 한 마리가 수면을 찰랑거리며 나타났다가 다시 들어가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의 끝에서 배우는 이별의 언어
헤어지자는 말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조금만 힘들어도 끝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툼을 싫어하고 상대와 조율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힘듦이 세상에 모든 것인 것처럼. 그러니까 세상은 공기로 가득 찬 게 아니라 어두운 감정으로 가득하다는 듯이 말이다. 헤어지자. 는 말이 ESC 버튼처럼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대답은 반반일 것이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반반이다. 나는 모른다. 웃긴 건, 만남에는 이유가 없을지 몰라도, 모든 헤어짐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냥' 만날 수는 있어도 '그냥' 헤어지는 경우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돌멩이를 던질까 말까 위협하듯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별로라는 것쯤은 안다.
당신도 그랬다. 나중에 나는 그 헤어짐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묻어둔다고 덮어둔다고, 묻어지지도 덮어지지도 않는 성질의 것이었다. 씨를 심어 두고 올라오는 싹을 막을 수 없듯이. 애초에 잘라버리든 뽑아버리든 나도 어떤 행동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저 오늘 또 변덕이구나, 심술이구나 해버렸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에는 헤어짐이 없었으니까. 그것을 어리석다거나 눈치 없다고 비난할지언정 덜 사랑했다고, 잘못 사랑한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내 잘못이 있다면 사랑하는 것까지만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별을 할 줄 몰랐다. 사랑을 배운 적은 없지만 이별은 따로 배워뒀어야 했다. 사랑하는 것만큼 이별도 중요하다. 사는 것만큼 죽는 것도 중요하듯이. 하지만 나는 그 찰랑거리는 이유를 끝까지 찾을 수가 없었다.
헤어질까. 헤어지자. 헤어진다. 헤어졌다. 그 네 문장. 열여섯 글자. 그 글자 안에 담긴 수많은 함의를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 그 열여섯 글자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그게 뭐라고. 도대체 뭐라고. 나는 수많은 불면의 밤을 새워가면서, 수많은 술병을 넘어뜨려가면서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 그 말을 침 뱉듯, 재채기를 하듯 아무렇지 않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잘못이 자기 탓이 아니라는 듯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게 헤어지자는 말은 신성 모독만큼이나 불경스러운 말이었다. 그것은 상대를 내 안에서 없앤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쨌든 살인은 나쁜 거니까. 오, 나는 이제 농담도 할 줄 안다. 하지만 맞는 말이지 않은가. 내 안에서 당신을 없앤다는 게 당신을 살해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아예 토막을 내어서 내 마음 저 골짜기, 저 야산, 저 강기슭에 묻어둔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냔 말인가. 나는 유치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따지면 상대는 이미 연쇄살인범인데 말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만남보다 힘들다는 것을 안다. 만나는 것은 아무 하고나 할 수 있지만 헤어진다는 것은 아무 하고나 할 수가 없다.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지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사용한 침대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척하는 것처럼.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그 흔적을 만드는 일보다 언제나 배 이상은 힘든 일이다. 당신이 내게 흔적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나는 다만 그 흔적 이전으로 돌아가는 기회는 없느냐고 되묻고 싶다. 아예 당신을 만나기 전으로. 차라리 이 고통을 몰랐던 순간으로. 내가 온전히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갈 수만 있다면 당신이 원하는, 매일 노래하는 그 이별을 나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언제나 사랑한 쪽은 약자라지만, 나는 사랑한 쪽보다는 이별이 두려웠던 쪽으로 해두고 싶다. 어쩌면 내 사랑에도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이별의 두려움에는 총량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안다. 비굴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어느 순간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마치 신처럼, 영원을 사는 존재처럼. 오늘은 이별하고 내일 사랑하자고. 그런 것이 주문을 외우듯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과는 이별을 해야 된다는 것을. 그래야지 우리의 관계도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그것이 아름다운 이별이든, 추악한 이별이든. 어쨌든 이별은 이별이다. 생과 사처럼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그것이 오늘이든. 내일이든. 어쨌든 한 번쯤 겪어야 하는 게 이별이다.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있다면 언젠가는 삼키거나 뱉어야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