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주왕복선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구름이 두터웠다. 발사가 연기될 거라는 말도 돌았다. 엄청난 불길이 우주선을 지구 밖으로 내던질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우리는 넓고 습한 대지와 야자수, 갯벌과 수풀을 지나갔다. 부리주머니가 축 늘어진 펠리컨이 천천히 날아올랐다. 좀 더 달리자 다리가 나타나고 저 다리만 지나면 발사대였다. 아무래도 구름이 두터워서 발사가 연기될 것 같았다. 우려하는 동안 거대한 우주선의 윤곽이 나타났다. 그 웅장한 모습에 나는 그만 다른 것은 다 하찮아지고 말았다. 가령, ‘미안’이라는 두 글자처럼. 한입 크게 베어 간 내 마음도 당신 부리주머니 속에 그대로일까. 구름은 여전히 두터웠다. 관제탑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고, 나도 군중에 섞여 숫자를 거꾸로 외쳤다. 나에게는 그 역산逆算이 꼭 시간을 되돌리는 주문 같았다. 왕복되지 못한 마음이 광활한 우주공간을 표류할 것 같았다. 구름이 두터웠다. 나는 그 강철 같은 구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마침내 굉음과 함께 우주선 밑에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이제 곧 사방에 불이 날 거였다. 지구에도 온 우주에도, 부리주머니 속에서 뿜어져 나온 불이 사방에 옮겨 붙을 거였다.
발사된 감정과 왕복 실패의 기록
펠리컨이 작은 아이를 집어삼키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펠리컨은 본능적으로 입에 들어갈 것 같은 크기면 부리를 벌리고 삼키려고 한다. 다 큰 성인의 머리통에도 잘도 부리를 갖다 댄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처량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들어가지도 않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삼키지도 못할 것을 미련하게도 부리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애를 쓰는 모습이 영 애처로워서 끝까지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왕복의 왕복이란 결국
출발도, 도착도 못한 마음이다.
펠리컨은 보통 물고기를 먹는다. 커다란 부리로 물을 함께 퍼담은 뒤, 물은 흘려보내고, 주머니 속 물고기만 골라 머리를 젖혀 삼킨다. 정정상적인 일은 아니지만, 펠리컨이 비둘기나 토끼를 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부리주머니 안에서 질식시킨 뒤, 움직임이 멈추기를 기다린다. 내가 펠리컨 같기도 하고 당신이 펠리컨 같기도 하다. 우리는 저마다의 부리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아직 삼키지 않은 감정과 삼킬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다. 부리에 딱 걸친 당신을 삼켜보려고 아등바등하는 내 모습과 삼켜지지 못한 내 마음을 질식될 때까지 기다리는 당신의 모습이 뒤엉켜서 물고기도, 토끼도, 비둘기로 한데 모여 어지럽게 고여있었다.
우리 감정의 주머니도 그처럼 혼잡하고, 그처럼 비정상적이다.
우주는 멀다. 멀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주를 몇 번씩 오가는 왕복선을 보면, 그 떠남과 돌아옴이 내게는 늘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의 마음도 여기서 보면 우주처럼 멀다. 올려다보는 마음을 늘 그렇다. 내려다보는 마음은 지척이지만 올려다보는 마음은 천리千里다. 내가 쏘아 올린 말과 행동이 마음이라는 형태에 담겨 쏘아진다. 보이저호처럼 인류의 메시지를 가지고 언제까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닿을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송신은 내 마음이지만 착신은 외계인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당신은 외계인이로구나. 힘없는 지구인은 하늘만 올려다보며 다음번 발사를 기다린다. 돌아올지, 표류될지 모르는 그 되돌릴 수 없는 마음에 대하여. 별이 반짝거리는 밤에는 말간 하늘에 손을 동그랗게 오므려 망원경처럼 갖다 대보기도 하는 것이다.
YES or NO
한 마디라고 응답해 주면 내 마음도 활주로에 멋진 착륙을 해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