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마을은 저녁이 되기도 전에 이미 텅 비어버렸다. 멀리 포성이 들리고 피융- 날아온 포탄이 쾅하고 산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장작을 가져와 높게 쌓았다. 아침부터 산을 오르락 거리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는 오늘 모닥불을 크게 피울 예정이었다. 그 불빛을 보고 아무나 와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피난을 떠나기 전, 옆 집 할멈은 혀를 끌끌 차며 여자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이제 마을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었다. 그것은 그녀의 소문과도 관련이 있었다. 여자는 저고리로 눈물을 닦는 척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 누구도 뒤돌아보는 이 없었다.
여자는 장작을 더 높게 쌓았다. 어제저녁에는 비가 내렸고 나무는 죄다 젖어있었지만 그런 것은 그녀에게 상관이 없었다. 오늘은 불을 지를 것이었다. 온 마을에 불을 지를 것이었다.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노래도 부를 것이었다. 여자는 흥분된 마음으로 불을 지폈다. 장작은 순식간에 타올라 온 세상을 태워버릴 것이다. 그러나 불씨는 젖은 나무에 닿아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몇 번이고 불을 피우려고 했지만 어떤 것도 불타지 않았다. 여자는 공허와 허탈감에 주저앉고 말았다. 멀리 포성이 들리고 피융- 날아온 포탄이 쾅하고 터져야 하는데.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깊어진 밤에는 그녀 속에서 쾅쾅쾅-하고 몇 번씩이나 포탄이 터지기도 하였다.
쾅쾅쾅, 안에서 터지는 사람들
요즘 사람들은 감정 표현에 서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다. 감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여유 있는 태도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기분이 나빠도 기분 나쁘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긁?’이라며 비웃는다. 사랑은 유치하고 증오도 쓸데없다. 울지 못하고, 고함지르지 못하고, 누군가는 제시간에 떠나지 못했다.
대개 그런 감정들은 결국 안에서 터졌다.
밖으로 불꽃이 튀지 못한 감정은 안에서 몇 번씩이나 쾅쾅쾅— 하고 스스로를 파괴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마음들을 오래 봐왔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 중 하나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발의 불발』은 그런 이야기다. 그녀는 ‘불을 지르겠다’고 말하지만, 막상 불은 붙지 않는다. 장작은 젖어 있고, 주변은 텅 비었으며,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는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감정은 불발되었고, 포탄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무너져버렸다. 그 무너짐이 유일하게 폭발하는 곳은, 오직 그녀의 안쪽뿐이었다.
나는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을 시로 남기고 싶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실패, 터지지 않았기에 더 고통스러운 내면의 파괴, 불붙지 않았기에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시는, 누군가를 향해 던진 비난도 아니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변명도 아니다. 그저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 어둠 속에 앉아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결국 안에서 쾅쾅쾅— 터져버린 감정의 기록이다.
왜 더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나는 교훈이 담긴 동화책을 쓰는 게 아니다. 나는 비뚤어지고 꼬여있고 어딘가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을 도와주겠다' '구해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바라 봐주고 ‘나도 그래요’ 하고 내 상처를 보여주는 것. 그럼 상대는 최소한 더 삐뚤거나 더 꼬이거나 더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인간은 타인의 행복보다 불행에 더 안도하게 되어있다. 그저 나의 아픔을 인정하고 당신도 그렇구나. 그래 나 혼자서만 특별히 힘든 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시를 쓰고 싶다. 그리고 오늘도 불발된 감정 하나를 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것을 알려주고 싶다.
쾅쾅쾅!
이 소리도 함께 듣노라면 최소한 더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높게 쌓아둔 장작불 앞에서 밤이 새도록 춤을 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