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자의 시선
옆집에서 이사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도 한밤 중에 떠나는 모양이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이제 나뿐이었다. 50년도 넘은 아파트였다. 이제 도시는 어둠과 정적으로 지어진 것 같았다. 한때는 반짝이던 도시였다. 덫에 걸려 죽은 짐승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피를 빼듯이. 도시의 빛도 모조리 흘러 나갔다. 그 틈에 섞여 사람들도 저마다의 도주를 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침묵이 점령군처럼 도시를 배회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 바스락거리는 곤충 같은 이 도시를 파리처럼 쏘다녔다. 그것은 왠지 내 몸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빈 혈관 같은 좁은 골목길. 섬유종처럼 튀어나온 돌부리. 그러고 보면 낮에 떠나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도 한 때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내가 언제 어떻게 덫에 걸렸는가. 하고 돌이켜지지 않는 것들을 돌이켜보려고 애를 썼다. 짐을 다 옮겼는지 트럭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와 엄마가 문을 나섰다. 밤길은 죽은 혈관처럼 무참히도 공허했다. 떠나는 자들은 늘어진 도로를 재빨리 걸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배웅하는 이웃사촌처럼. 문구멍으로 그들을 관찰했다. 아이가 잠투정을 하는지 조용히 칭얼거렸고. 아이의 엄마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계속해서 같은 말을 곡소리처럼 내었다.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초상을 당한 집인 줄 알았을 것이다.
방학식을 하는 날에는 모두 한데 섞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만 학교에 남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유난히 텅 빈 교실과 운동장을 기억한다. 남겨진 자의 쓸쓸함이란. 방학이라 기분이 좋았을 텐데도 지금도 그때를 떠올려보면 막막하게 외로워지곤 한다.
인간은 대부분 다른 인간과 비슷한 행보를 하고 싶어 한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는 일련의 행보를 ‘왜’나 ‘어째서’ 같은 물음 위에 올려놓는 사람보다는 ‘그냥’이라는 답 위에 올려놓는 사람이 더 많다. 사랑하니까 결혼을 하고 살기 위해서 집을 사고 그리고 그 두 개의 결실이 출산으로 이어진다. 사랑하고 살아가면서 아이를 낳는 것. 솔직히 왜, 어째서라고 묻는 사람이 더 피곤한 취급을 받는다. 나조차도 그 과정을 물음표 위에 올려놓아 본 적이 없다.
남들처럼 사는 게 덜 외로우니까. 현재의 독신자나 비혼주의자들도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그리고 더 행복해진다는 전제 조건이라면 굳이 결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홀로 남겨진다는 건 대단한 에너지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보통과 평균의 무리에 껴있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간단하게만 봐도 무리에만 끼어있으면 쓸데없는 질문과 대답을 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 틈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얼룩말 무리에서 나는 ‘얼룩말’으로서만 존재하겠다는 의미다. 어쨌든 홀로 남겨진 얼룩말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텅 빈 운동장이 떠오른다. 망할, PTSD. 젠장.
그들의 여정에 함께 하지 못한다는 건, 분명 괴로운 일이다. 떠나야 되는 이유나 목적보다 떠나겠다는 의지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반대로 남겨진 자들의 의지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자의’는 존중받아야 한다. 누군가는 홀로 남겨진다는 쓸쓸함을 버텨낼 수 없다. 또 누군가는 도저히 얼룩말로는 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둘의 의지는 같다. 남겨진 자들이 있기 때문에 떠나는 자들도 성립이 된다. 아무 의지가 없는 건 공간뿐이다. 하지만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 덕분에 아무 의지가 없는 공간에 의미가 생긴다. 그래서 살아가는 지금의 도시가 때로는 내 신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남겨지는 쪽을 택하고 싶지는 않다. 방학식 때 일찍 끝나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가던 길은 사랑스러웠다. 그때 세상은 아름답고 화창했다. 그렇다고 학교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세상 또한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내 기준과 잣대로는 아무것도 재단할 수 없다. 도망치듯 떠나는 사람도, 그 도망을 바라보면서 움직이는 않는 사람도. 계속 버텨내고 살다 보면 다시 그 도시, 반짝이는 가로수 불빛 아래서 스치듯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Adios Am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