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안아주는 선의
결핍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상처를 받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 먼저 상처를 주는, 겉만 번지르르한 아는 척하는 애송이 이야기. 주인공 윌(멧 데이먼)은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지만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인물이다. 보스턴을 떠나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위해 싸워주는 친구들 곁에만 머물며 자신이 만든 작은 세계 안에서 빈약한 울타리를 치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조차 다복한 집 안에서 자란 척 거짓말을 하고,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대학에 가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보란 듯 풀어낸다.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가장 불완전한 삶을 살아간다. 그의 결핍은 사랑하는 존재에게서 버림받은 기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시작되면 도망친다. 사랑의 아름다운 면만을 간직하면 완벽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더 가봤자 버림받을까 봐, 상처받을까 봐 오히려 먼저 상대를 버리고 상처를 준다. 그가 기댈 곳이란 친구들과 책 속에 죽은 천재들뿐이다.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의 결핍은 죽은 아내와의 사랑이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그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학자로서의 명예도 시들고, 잘 나가는 옛 친구는 늘 얄밉다. 그러나 숀은 결핍을 알기 때문에 다른 심리학자들은 알아채지 못한 윌의 결핍을 알아본다. 상처받은 이유조차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단순한 위로로 그를 치유한다. 숀을 부둥켜안고 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윌의 울음은 오랜 시간 곯을 대로 곯은 어린 시절 윌의 울음이다. 숀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랑의 마지막까지 가본 사람이다. 그래서 경험해보지 못했으면서 모든 걸 아는 척 지껄이는 윌의 허세를 꿰뚫어 낸다. 꿰뚫린 윌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앞에 앉아 책 속의 말이 아닌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핍되어 있으면서 결핍되지 않은 숀의 모습을 보며 윌 또한 그의 사랑을 따라가 보기로 결정한다.
제랄드 램보(스텔란 스카스가드)의 결핍은 천재성이다. 그는 윌이 나타나기 전만 해도 아무런 결핍이 없던 인물이다. 하지만 윌을 만나고 세상에 윌 같은 천재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천재인 줄 모른다. 믿어주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램보는 윌을 믿어주고 바른 곳으로 이끄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램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윌의 천재성에만 집중한다. 그는 세상 속에 윌을 증명하고 좋은 직장을 추천함으로 자신의 결핍을 또 다른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램보는 숀만큼 윌을 염려하고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표현은 사회적 성공에만 매몰되어 있다. 그는 숀처럼 사랑의 끝에 가본 적이 없고, 결핍조차 없이 승승장구하던 인물이라 윌의 결핍이 사랑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아니 그런 결핍조차 극복해 내야 할 과제로 여긴다. 그리고 그 압박은 윌과의 갈등에 시발점이 된다. 하지만 결국 그의 진심이 윌에게 전해짐으로 그 또한 어느 정도 결핍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척 슐리반(벤 에플렉)의 결핍은 미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육체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한다. 척은 윌의 재능이 부럽고 그의 행복을 무엇보다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복권을 깔고 앉아 바꾸길 겁내는’ 윌이 죽일 만큼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윌은 사랑을 겁내면서 척의 사랑은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것은 윌의 사랑이 우정이기 때문이다. 우정이 깊어지면 그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 된다. 그 사랑은 버려질 수 없는 사랑이고, 압박이나 심판이 없는 사랑이다. 윌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가족의 대체재로 친구들을 세운다. 그 안에서 윌은 겁이 나서 잔뜩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척은 그런 윌이 무엇을 겁내는지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 그러므로 윌이 어떠한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는 날이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일일 거라고 말한다. 그 떠남으로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스카일러(미니 드라이버)의 결핍은 윌에 대한 사랑이다. 그녀 또한 숀처럼 윌의 결핍을 쉽게 간파했다. 그것은 숀처럼 사랑의 끝에 가본 인물이 아니라, 그녀가 사랑의 시작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윌을 도와주고 싶다. 함께 성장하고 그와의 사랑을 완성하고 싶다. 하지만 실패한다. 윌은 버림받기가 두려워 스카일러를 버렸고, 버려진 스카일러는 버려졌다는 사실보다 버릴 수 없는 윌로 인해 괴롭다. 그녀는 윌에 대한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만 겁이 나서 아무것도 내어줄 수 없는 윌은 옷도 입지 않은 채 도망치기 바쁘다. 아벨 보나르의 ‘우정은 거짓 때문에 깨지고, 사랑은 진실 때문에 깨진다’는 말처럼 그녀는 애초부터 윌의 거짓말을 알아채지만 굳이 들추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들춰낸 진실을 윌은 감당할 수 없었고, 스카일러는 진실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윌을 감당할 수가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윌이 친구들이 만들어준 고물 자동차를 타고 스카일러를 찾으러 떠나는 장면이다. 자연스럽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몇 분 동안이나 도로를 내달리는 윌의 차를 볼 때면, 나는 이윽고 그 차가 멈추는 곳을 상상한다. 꼭 만나봐야 할 여자를 만나러 가는 윌의 얼굴을 상상한다. 그 얼굴에는 과연 결핍이 사라졌을까. 스카일러를 만난 그는 온전히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까. 어디에나 선의가 있다. 그 선의를 보여주는 사람과 알아주는 사람도 있다. 결핍을 메워주는 건 과잉이 아니라 그 결핍을 안아주는 선의 자체일 수 있다. 굿윌 헌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