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에서 기억난 무례

비눗방울 같은 시간 속에서

by 슴도치


그 시간은 비눗방울 속에 있었다. 당신에게 무례한 말을 들었던 날이었다. 책꽂이에 꽂힌 앨범은 2010년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후 몇 해가 지나서 당신을 알았다. 밤이었고 우리는 서로의 옆에 앉아 있었다. 수많은 시간과 공간이 앨범의 낱장처럼 겹쳐있다가 한 곳에서 펼쳐졌다. 그날에 나는 당신에게 무례하게 대했다. 집에 가려는 내게 당신은 ‘잘 가요’라고 말했다. 한 발자국도 못 간 나는 당신과 여전히 그날에 있었다.


비 눗 방 울



우리는 각자에게 기록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곧 2015년이 되고 2016년이 되고 비눗물처럼 한데 섞였다. 그때도 당신은 졸업앨범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내게 무례를 겪는 건 그 무렵의 일이고 내가 무례한 말을 듣게 되는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사과를 들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당신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시간 안에서 문득문득 무례했고 무례한 만큼 나이 들어갔다. 마침, 책꽂이에 졸업앨범이 보였다. 내가 없던 시간 속에 당신이 비눗방울처럼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무례하게 구는 경우는 보통 가까운 사람일 때가 많다. 어렵거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은 기술적인 모습이다. 허물없이 하는 행동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고 아쉽게도 인간의 본능에는 예의가 없다.



내가 무례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상대가 그 무례를 참아줄 수가 있어서? 혹은 무례해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무례라는 창끝을 휙휙 겨냥하고 휘두르고 찌른다. 당신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고. 우리는 종종 자신을 위해 타인을 다치게 한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서. 그 점을 이해하면서도 두렵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에.



무례하고 무례를 당한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만, 우리는 비선형적으로 성장한다. 시간과 함께 똑바르게 성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를 당하다 보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무례하다는 건 마치 기름에 절은 흙과 같아서 몸에 한 번 묻으면 닦아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에게 보낸 무례도 같을 것이다.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과한다면 좋겠지만 이미 말했듯이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고 곁에 있던 사람들도 강물에 의해 침식하는 땅과 바위처럼 갈리고 사라지고 만다. 그것이 나의 무례 때문이든, 시간 때문이든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온다. 무례를 당하고 범하며 세월이 지난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팽개쳐둔 앨범 속에도 무례한 나와, 무례를 당할 젊은 날의 내가 있다.


비눗방울 속에 든 시간 같다. 언제 흘렀는지도 모를 월요일과 일요일의 반복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이 들었을까. 누군가의 비눗방울 속에도 내가 있을 것이다. 시간과 무례와 인연들이 첨벙 대며 만들어내는 비눗방울 같은 시간 속에서, 당신과 나의 무례로 상처처럼 생기는 주름을 만들며. 우리는 아직 멀었다. 어디가 먼지도 모르고 멀었다. 동그랗고 미끄덩한 게 훨훨 잘도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