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난방

난방비 같은 사랑

by 슴도치

마을 스피커에서 연설문이 장황하게 울려 퍼졌다. 남자는 옷장에서 내복을 꺼냈다. 바지, 겉옷을 두 벌씩 껴입고 두툼한 패딩을 입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집은 바깥보다 추웠다. 공장의 굴뚝처럼 남자의 입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생산되는 건 없었다. 예전에 남자는 땅굴 속에서 폭파 작업을 했었다. 홀로 땅굴에 남아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일 때는 춥지 않았다. 발전소 가동이 멈춘 지 여러 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고 단속 나온 공무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공무원들의 수염도 설산처럼 하얗게 얼어 있었다. 그 수염 속에도 나무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공무원들이 서로 쫓고 있었다. 남자는 너무 추워서 따듯했던 기억조차 잊어버렸다. 밤에 잘 때는 가위에 눌렸고 그 누르는 귀신도 꽁꽁 얼어 있었다.


사람들은 얼어 죽거나 죽어서 얼었다. 얼어 죽은 사람의 몸은 얼음보다 단단해서 망치로 굳은 관절을 펴기도 했다. 그 망치질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한 망치질이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언 집들을 뒤졌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망치 소리 같았다. 군인들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얼어 죽은 사람들과 얼어 죽을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땀을 흘린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았다. 그때가 아마 마지막 여름휴가 때였을 것이다. 남자는 집이 땅굴처럼 느껴졌다. 옷을 다 입은 남자는 천천히 마지막 남은 성냥에 불을 붙였다. 바닥에는 다이너마이트가 장작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성냥의 티끌만 한 온기가 고향처럼 느껴졌다. 때마침 문밖에서 군인들이 문을 두드렸다. 남자는 홀로 남은 그때처럼 심지에 불을 붙였다.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 적에는 겨울에 보일러 온도를 높게 설정해 뒀었다. 한겨울에도 더워서 반바지, 반팔을 입고 땀이 날 정도로 뜨겁게 지냈었다. 겨울이 추운 줄 몰랐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지내는 사람들의 체온은 늘 따뜻하다.



나이가 들고 난방비를 지불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그 시절 나는 얼마나 사랑받았는가.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 숫자는 많은 것을 표현한다. 어쨌든 선천적인 부자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에게 돈이란 많은 노력과 진심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매개체다. 단순히 속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의 돈이 당신의 체온으로 치환된다. 돈보다 당신의 따뜻함을 원한다. 이만하면 훌륭한 사랑 고백이 아닌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때 그들의 체온은 내게 중요한 관심사다. 잘 자고, 잘 먹고, 덥거나 춥지 않게 지내는지 물어보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온도란 먹고 자는 것만큼 중요하다. 몸의 온도 못지않게 마음의 온도 또한 중요하다. 마음이 추운 사람은 몸이 아무리 따뜻해도 쉽게 차가운 곳으로 열이 전도되고 만다.



춥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혼자라는 건 추운 일이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는 내게 가장 알맞은 온도의 사람을 찾는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너무 뜨거울 때 식혀줄 사람, 내가 너무 추울 때 안아줄 사람을 말이다. 그러므로 홀로 남아 불을 붙이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너무 춥다.



다이너마이트라도 터뜨려야 데워지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다.

대신 불을 붙여줄 수 없지만

멀리서라도 응원하고 싶은 것은 또 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