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의 없음
며칠이나 지났다. 앞의 고개만 넘으면 곧 평지였다. 산마루에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산을 내려가기 전 마지막 쉼터가 보였다. 예닐곱 명의 나그네들은 떠나온 고향과 떠나갈 타향에 대해 떠들었다. 나는 배정된 방구석에 짐가방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단순한 짐이 아니라 집이었다. 작은 방이라고 부르는 주머니에 지퍼를 열고 세면도구를 꺼냈다. 큰 방이라고 부르는 가방 한 켠 공간에 여벌의 양말과 셔츠를 꺼냈다. 거실이라고 부르는 가방 제일 널따란 자리에는 침낭과 텐트, 취사도구가 있었다. 오늘은 거실에 갈 일이 없었다.
우리는 벽난로 주변에 모여 술을 나눠마셨다. 마치 몇 십년동안 봐온 사람들처럼 허물이 없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이 어깨에 손을 두르고 친근하게 대했다. 멸치 잡는 일을 하다가 일거리를 찾아 떠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내일 평지에 도착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산을 넘으면 가야할 곳이 정해질 줄 알았다. 초록색 이정표. 하지만 저절로 되는 건 없었다. 어느 결에 잠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깬 나는 습관적으로 더듬더듬 가방을 찾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평생을 걸려도 도착하지 못할 빈 공간만 있었다. 맞은편 침대에 남자의 신발도 능선도 보이지 않았다. 내일 볼 평지만 미리 있었다. 떠나던 날 지평선에 걸린 나의 집을 돌아본 적이 있었다. 점처럼 작아서 잠깐 다른 곳을 쳐다보면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점보다 작은 내가 거기 살았었다.
떠남이란 돌아올 곳이나 도착할 곳이 있어야 완결된다. 정처 없다.라는 말의 정처定處의 한자어의 뜻은 정하다의 정定과 곳이나 처소의 처處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처는 장소만 뜻하는 게 아니라 시간, 지위 등도 뜻한다. 그러니까 물질적인 장소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때와 위치도 포함한다는 의미다.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정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을 정처 없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정처가 없다.
미래에 자신의 시간과 장소와 역할을 미리 정할 수 있는 상황은 별로 없다. 그런 것은 결혼식 때나 가능하다. 하지만 그 또한 가끔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디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인생의 질문은 대단하지만, 그 질문은 진심일 때만 대단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 오늘, 내일이 중요하지, 어떤 인간이 되어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의 본질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될 수 있는 뒤로 미뤄놓고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야 나는 왜 살고 있는 거지? 하고 낯선 길 위에서 서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나그네다. 어쩔 수 없이 한 공간과 시간에 모여서 좋은 사람인 척 살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하고 우위에 서고 협잡과 도둑질과 음해를 한다. 물론, 좋은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은 상대에 대한 진심이 없다. 그건 사회생활의 필수 기술이기도 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여주는 짓은 위험하다. 가면을 쓰고 변조된 억양과 말투로 고질적인 불만과 혐오와 불신을 가장한다.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참아내려면, 역사적으로 합의된 사회의 약속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작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사람의 배신은 늘 아프다. 살다보면 발바닥에 박힌 압정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갈 길이 바쁜데 압정까지 박히면 한동안은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일 수도 있고, 안 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새로 산 압정이든 오래된 압정이든 아픈 것은 똑같다. 물론, 오래된 압정은 파상풍 위험 때문에 신체를 절단해야 될 수도 있다.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내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내 짐가방을 들고 급히 떠난 침대의 흔적을 보면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짐가방에는 상대에 대한 내 마음도 들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온갖 사기꾼과 도둑놈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걸어나간다. 일요일은 지나가고 월요일은 돌아오고 만다. 어쨌든 아침이 되면 어디든 떠나게 되는 게 인간이다. 잠시 잠깐 쉴 수도, 주저 앉아 울 수도 있지만 살아가는 사람은 다시금 움직여야 한다. 계속 움직여야지 살아갈 수 있다. 점처럼 작은 집이 싫어서 떠난 이유는 그 점보다 작은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등성이를 너머 평지에 다다르는 게 두려운 건 그 뒤에 여정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은 어디에나 있고 또 다른 산에 도전할 이유도 다시 생기기 마련이다. 내 가방을 다시 찾을 수도 있고, 새 가방을 다시 살 수도 있다. 인생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 수많은 질문과 해답을 고를 수 있다는데 있다. 셀 수 없는 길과 집들처럼.
오늘 당신의 여정은 안녕한가. 모든 나그네들이 결국 자신의 목적지에 다다르길.
점처럼 작은 내 미약한 기도라도 당신들에게 가 닿길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