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당신인지 알고 있었다

도난된 사랑의 흔적

by 슴도치

금고에 돈이 없어졌다는 걸 알아챈 건 점심 무렵의 일이었다. 나는 다른 곳에 두었는지 알고 장롱이며 서랍을 전부 열었다. 하지만 철 지난 옷과 때 지난 편지와 사진. 이제는 차고 다니지 않는 장신구들. 전부 지나가고 남아버린 것들밖에 없었다. 작은 방에는 아직 쌓아둔 것들이 많았다. 나는 그곳에 있는 상자도 전부 꺼냈다. 나는 이제 무얼 찾는지도 모르고 찾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돈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혹시 철 지난 마음이나 때 지난 후회나 이제는 말하고 다니지 않는 단어들 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일부러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더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잃어버린 돈봉투 같은 거였다. 이제 막 작은 방에서 마지막 상자를 꺼내 앨범을 꺼내보고 있을 때 당신이 돌아왔다. 당신은 어지러운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현관에만 서 있었다. 현관등이 켜졌다가 꺼질 때쯤. 당신이 입을 열었다. 갖다 놓으려고 했었어. 정말이야. 손에 들린 꾸깃한 돈봉투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처럼. 어두운 등 밑에 있었다.








물건이나 돈이 없어져 본 경험이 흥미로운 건 자신의 행적을 자신이 추적한다는데 있다. 잃어버린 것들의 가장 최근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내가 나를 조사하고 의심하고 예상하고 분석한다. 그러니까 나는 도망자이면서 추적자가 된다. 내가 나를 뒤쫓는다. 별 것 아니고 의미도 없던 행동과 말들이 중요한 단서와 증거가 된다. 자 이제 말해봐. 나에 대해서!라고 내가 나를 추궁한다. 그럼 나는 내가 낯설다. 나는 말문이 막힌다. 내가 나에게 당황한다. 마치 내가 나의 피의자인 것처럼. 사실 그럴 수도 있다.


나 자신을 난처하고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 때가 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나의 배신이고 나의 실수고 잘못된 상황판단이다. 내가 나를 믿는다는 건 위험하다. 그런 면에서 내 최대의 적은 내가 맞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을 준다고 결정하는 몫도 나다. 그렇게 대책 없이, 계획 없이 상대의 금고에 내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 마음은 어떻게 보면 내 영혼이다. 내가 나를 자발적으로 상대의 마음에 감금한다. 그러다가 사라진 마음은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겨우 분실물일 뿐이다. 겨우 분실물. 겨우 나의 분신.



사라진 마음은 영영 사라진 채로 남게 된다. 물건도 돈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마음은 다시는 메울 수가 없다. 빼버린 치아의 빈 곳을 혀로 더듬는 것처럼. 공허하고 허전하다. 언제나 그렇다. 그래서 한 번 지독하게 사랑해 본 사람은 다시는 그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마음의 총량이라는 것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한 번 회복되지 못한 마음은 아껴야 한다. 왜냐하면 전부 내어줄 용기가 없기 때문에. 내가 모아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어서. 다시는 나를 함부로 분실할 수 없으니까.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건 늘 속상하고 자꾸만 생각나는 일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채로 남아있으면 나머지도 잃게 된다. 그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자책은 짧을수록 좋다. 얼른 나머지 것들을 챙겨 추슬러야 한다. 남아있는 게 있다는 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보다는 분명 좋은 일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당신에게 잃어버린 내 마음이 어딘가에 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것이 완벽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수는 없다. 세상 그 어디쯤 약간의 형태와 자국, 조각은 남게 된다. 그 마음이 혼자서라도 잘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의 어딘가, 유난히 길었던 목과 작고 동그랬던 복숭아뼈, 자고 일어나면 기지개 켜던 몸짓 어딘가에 내 마음이 남아서 당신의 마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그건 도난이 아니라 전이가 될 것이다.


나에게 있던 어떤 마음은 그런 식으로

세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