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사랑의 온도

우리의 미지근한 사랑

by 슴도치

처음 영하로 떨어진 날이었다. 자동차 안 공기는 이불을 잔뜩 쌓아둔 방처럼 답답했다. 남자는 히터를 끄고 차문을 조금 열었다. 여자는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사실 남자와 여자는 요즘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집 안의 너저분한 잡동사니들처럼 의미가 없었다. 남자는 시계를 보았다. 12월이었고 12월에는 모든 시간이 12시처럼 보여서 괜히 조바심이 났다. 앞차는 느릿하게 달렸다. 남자를 괴롭히는 일은 그보다 많았다. 여자는 벌써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남자는 앞으로의 길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눈이 많이 와도 길 끝에는 여자가 있을 거였다. 라디오에서는 올 겨울에 폭설이 자주 올 겁니다. 하고 남의 일처럼 말했다. 눈도 오지 않는데 오늘따라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 여자는 이정표처럼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언 손을 매만졌다. 이불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바람도 폭설도 많은데 남자와 여자에게는 따뜻하게 해 줄 불만 없었다. 남자의 따뜻한 손과 여자의 차가운 손이 만나 미지근하게 변해갔다. 그러다가 차도 세상도 모두 미지근해져서 문득, 꽃도 다시 피는 줄 몰랐다.







뜨겁게 불타오르다, 차갑게 식다. 보통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자주 하는 표현이다. 사랑의 온도는 마음의 온도와 같다. 사람의 마음 또한 사계절처럼 따뜻하고, 뜨겁고, 시원하고, 차갑다. 마음 안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은 그래서 역시 마음의 주인에 의해 체온이 달라진다. 같은 마음을, 일정한 계절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도 자신을 변화시킬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부르든, 사랑이라고 부르든 중요한 건 지금까지 알던 세상의 온도가 바뀐다는데 있다. 그것은 빙하기의 시작일 수도, 끝일 수도, 혹은 건기와 우기의 경계일 수도 있다. 어쨌든 마음속 세상의 사람들은 죽고 이동하고 살아남는다. 그리고 천천히 나라는 존재의 지각판도 움직인다. 다른 마음,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



둘의 사랑이, 사랑의 온도가 완벽하게 동일할 수는 없다. 열렬히 사랑한다고 해도 꼭 둘 중의 한 명의 온도는 높거나 낮다. 그렇다고 그것을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사랑할 뿐이다. 그러니까 더 체력이 있는 사람이, 더 따뜻한 사람이 상대를 위해 더 해주면 된다. 그것은 불공평이 아니라 능력의 차이다. 더 사랑한 쪽이 불행하고 덜 사랑한 쪽이 행복한 게 아니다. 실제로 더 사랑한 쪽이 행복하다는 것은 사랑의 오래된 아이러니다. 물론 그 기쁨에 비례하여 후폭풍이 상대에 비해 큰 것도 어쩔 수 없는 인과관계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다. 나는 평형에 대해 말하고 싶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에 의해 덜 사랑한 쪽이 좀 더 사랑하게 되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랑은 더 갖는 게 아니라 버리는 행위다. 나의 것을, 나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나의 온도를 버리고 새로운 온도가 되기로 하는 결심이다. 그것을 희생이니 손해니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자신의 온도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핑계로 사랑을 불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것을 온전히 지키면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내 것을 전부 버리고 상대를 안았을 때 더욱 많은 갖게 된다. 당신의 온도와 나의 온도가 합해져 미지근해졌을 때, 더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미지근함이 아마 사랑의 온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