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그린
이 책은 첫 장에서 양치기 부족을 소개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목초지에 양떼를 풀어 기르는데, 어떤 부족은 가구에 따라 똑같은 수의 양을 키운다. 어떤 부족은 각 가구의 인원수에 따라 그 가구에서 키우는 양떼의 크기가 결정된다. 어떤 부족은 공동 목초지가 없다. 대신 작은 땅을 가지고 있는데, 빈부의 차이를 가져왔다. 마지막 부족은 목초지와 양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부족이다. 노동을 통해 거두어들인 수확은 부족의 모든 구성원에게 똑같이 분배되었지만 많은 분쟁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어느 여름 네 부족 가운데 있던 숲에 큰불이 나서 모든 것이 재로 변하고 만다. 이후 숲은 부드러운 잔디로 뒤덮인 언덕이 되었고, 근처에 살던 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땅을 차지하려고 몰려든다.
어떤 부족은 새 목초지가 모두의 것이며 공동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부족은 그들의 주장을 비웃으며 이미 새 목초지에 집을 짓고 돌담을 쌓고 가축을 풀어놓는다. 이러던 중 여러 사건이 발생하고, 아이가 죽는 일이 생기고 이는 유혈 사태로 발전한다. 먼 지역의 부족이 새 목초지로 이주해 오면서 사태는 지속적으로 악화된다.
자 이것은 도덕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부족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잣대, 사회적인 관습, 생각의 방식, 행동의 반경 등 우리가 맞닿아 있는 사회를 양치기 부족을 빗대어 설명하면서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우리는 때로 똑같은 것에 대해 불의와 분노를 느끼고, 정의감 때문이든 개인적 이익 때문이든 똑같은 목표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동료 들을 위해서도 싸운다. 명예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이를 어겼다면, 큰 수치심을 느낀다.
모두 나름대로 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그들이 싸운 까닭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여서가 아니다. 도덕적인 사회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 부족은 서로 다른 도덕적 상식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도덕의 부재를 경험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뉴스에서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겪고 있는 이들의 사연이 가득하다. 포털사이트 상위에는 늘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한 싸움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찬반이 늘 뜨겁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현대인들의 핵심 비극은 도덕적 문제들의 배후다.
우리가 늘 고민하는 명제들은 명확하게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가슴으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물론 사람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다르다. 이 책의 작가 조슈아 그린은 명료하게 도덕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새 목초지의 모든 부족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철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도덕적 상식이다.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어린이들에게 윤리관이나 도덕관을 채워주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물론 부모와 사회의 역할이 가장 크다.
예전에는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형제끼리는 우애를 키우며, 양보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왔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가족의 정을 듬뿍 느끼며 자라난 아이들은 누군가를 배려하고,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핵가족화된 가족 형태, 늘어난 1인 가구, 이미 노령사회로 진입했고, 노인가구도 많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고, 기관에 맡겨지면서 아이들은 가족과 따뜻한 교감을 하고 따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종일 없었던 부모의 부재에 떼를 부리고, 부모는 함께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고집부리는 아이를 달래기 급급하다. 기관에서는 부모의 항의를 들을까봐 똑부러지게 아이들에게 훈육을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은 점차 고집불통에 자기 자신만 아는 아이로 커 간다.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에는 별 관심 없이 오로지 자신에 집중하며 자라난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런 교육적 경험이나 생활의 체험 없이 저절로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걸까?
이 책의 예시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생계 활동에 유용한 양복을 지키기 위해 한 아이가 익사하도록 놔둔다면, 당신은 여전히 도덕적으로 아주 못된 사람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당신이 그런 양복을 장만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여력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에 빠진 아이의 생명을 구한 후에 새로 양복을 장만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 양복을 장만하기 전에 먼 지역에 사는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여력도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넓은 의미에서 필요한 것들을 일단 챙긴 뒤에도, 당신 앞에는 여전히 많은 도덕적 기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 늘 우리에게는 도덕적 기회들이 있었다. 이 책은 어쩌면 한국적 정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도덕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는 부분이었는데, 조슈아 그린은 도덕적 문제들을 구별해 우리의 도덕적 뇌의 특성을 파헤치면서 고차 도덕에 대해 말한다.
그가 말하는 고차 도덕은 마치 한 부족 안에서는 개인적 관심들이 경합할 때 그 부족의 도덕이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부족적 도덕들이 경합하는 상황에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세계적 차원의 도덕철학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런 고차 도덕은 경합하는 부족적 가치들 사이에 균형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균형을 만드는 데는 일종의 공동 통화가, 여러 가치들의 경중을 따지기 위한 통일된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