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효 사진집, 한그루 출판, 2024.
‘미여지벵듸’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의 느낌만으로는 가슴이 미어지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하고, 너른 들판의 어떤 모습을 일컫는 말 같기도 하다. 들어본 적 없는 이 단어를 강정효 작가의 사진집에서 만났다.
제주 곳곳 중산간에서 만날 수 있는 오름과 산, 산담.
제주 사람들은 무덤을 묘라 부르는 것보다 ‘산’이라고 표현한단다. 묘를 둘러싼 담이 산담인 것이다.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묘를 집의 개념으로 여겨 울타리를 만들어준 것을 산담이라 하는데, 밤에 들판에서 길을 잃은 이가 산담 안으로 들어와 잠을 자면 묘의 주인은 찾아온 이를 손님이라 여겨 자신의 제삿날이라 할지라도 손님을 놔두고 갈 수 없어 자손이 차린 제사상을 받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미련의 자리, 죽음을 지키는 울타리의 역할을 하는 산담은 독특한 제주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강정효의 사진은 제주의 자연 곳곳에 그림처럼 펼쳐진 산담의 모습을 때로는 먹먹한 시선으로, 때로는 무심한 정경으로 담아내면서 산 자와 죽은 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제주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언젠가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간 이들의 뒷자리를 묵묵히 그리워하며 보살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