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엑스포 엿보기

건축은 잘 모르지만 엑스포는 좋아(1)

by 수크

두바이에서 살면서 인상 깊었던 일을 꼽으라면 두바이엑스포 현장에서 7개월 간 일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힘들고 지쳐서 엑스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UAE부통령, 두바이 함단 왕세자, 슬로바키아대통령,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등 엑스포에서 일하면서 내가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의전했다. 엑스포 장에 국가관이 세워지기 전부터 컨테이너에서 근무하면서 건물들이 완성되는 것을 보았고 엑스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여러 국가관들을 관람했다. 벌써 두바이엑스포가 폐막한 지 3년이지만, 아직 가슴깊이 기억들이 남아있다.


두바이엑스포 개막준비
두바이엑스포 건설현장



엑스포장은 Mobility District(모빌리티존), Sustainability District(지속가능성존), Opportunity District(기회존)으로 나뉜다. 엑스포장은 4.38 제곱킬로미터로, 축구장 400개 규모다.(폐막 후에도 전시, 이벤트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 세계 192개국이 참가한 두바이 엑스포는 각각의 개별 전시관(Pavilion)이 있었다. 건설비용은 각 국가가 부담했으며, 예산의 문제를 겪는 아프리카 국가나 작은 섬나라들은 두바이정부에서 지어준 건물에 작게 국가관을 꾸미기도 했다. 사실상 엑스포는 각 국가관의 건축물을 뽐내는 자리였고 이 건축물 안에서 얼마나 국가의 발전상황과 문화적 특색을 잘 보여주는가가 중요했다.

두바이엑스포 지도



한국관은 모빌리티 존에 있었다. 한국관은 거대한 텐트 형상의 구조물이었다. 빛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통하는 개방형 건축물로, 마당이 있는 형태였다. 우리는 마당을 중정이라고 불렀다. 건축물 자체는 우리 민족의 흥을 잘 보여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과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K-POP공연도 하고 한국을 알리는 행사도 진행했다. 한국관 외부에는 1,600여 개의 큐브를 설치하여 정해진 시간마다 돌아가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다른 국가관보다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던 한국관은 다른 나라 정상들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인기관이었다.

중정에서 공연하는 모습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위공무원을 의전했을때 그는 한국관의 아름다움에 놀라면서 “한국관은 저녁에 와야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거 같다. 저녁노을과 어우러지는 큐브가 굉장히 멋있다”라는 평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사우디아라비아 공위공무원을 의전하는 모습
한국관 외부에서 보는 노을


한국관은 건축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지만 그 안에서 한국의 발전된 기술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관람객들은 내외부로 연결된 파사드를 돌며 AR기기를 통해 한국의 모빌리티를 체험할 수 있었고 버티컬 시네마를 통해 한국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버티컬 시네마였다. 큰 소파에 편하게 누워서 관람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더운 두바이 날씨를 피해 시원한 실내에서 진행되어서 인기가 많았다.


슬로바키아 대통령을 의전했을때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AR영상과 밤에 드론으로 찍은 큐브의 카드섹션과 같은 영상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처음 슬로바키아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했을 때 관장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라 처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당황했지만 막상 만나서 편하게 대화도 먼저 시작해 주시고 한국관에 대한 설명을 할 때 관심 있게 들어주셔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각국의 정상들과 고위공무원만 VIP투어와 패스트 트랙을 진행하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고 중동에 그렇게 많은 수의 공주와 왕자들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어느 한 날에는 사우디 왕의 셋째 아들이 방문했고 어느 날에는 왕족의 셋째 부인의 둘째 공주가 방문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수많은 왕족들과 각국의 장관들을 만나면서 나는 무슨 얘기를 했을까 생각해 보면 주로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에서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한국의 노래나 넷플릭스 시리즈도 이야기했고 신기하게도 한국에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 한 사람들도 꽤 있어서 어디 가봤는지부터 이야기를 했다. 어색함을 깨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한국에 온 지 이제 일 년 반, 휴대폰 안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면, 내가 이런 사람들을 만났고, 같이 함께 했었나 싶다. 지금은 엑스포에서의 모든 기억들이 그저 꿈같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엑스포란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엑스포에서의 기억들이 남은 내 2년의 주재원 생활을 버티는 힘이 되어주었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사실 나는 두바이엑스포가 폐막하고 나서도 그 공간이 주는 기억 때문에 종종 방문하고는 했다. 엑스포장 내 로브 호텔 1층 카페는 내가 두바이에서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고, 집중하며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힐링하고 싶을 때 찾아갔다. 40분을 운전해서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면 어김없이 내 기분은 좋아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여기 꼭 다시 와야지 생각했던 곳이다.(물론 지금은 조금 힘들 것 같다. 이 카페에 가려고 10시간의 비행기를 타기에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미화가 되나 보다. 그렇게 피곤하고 예민했던 시기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이처럼 가슴 벅차는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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