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생각이 많아진다. 연말이 되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상한 허무감과 허탈함, 겨울바람과 함께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차가운 불안감과 같은 것을 나도 느낀다.
2021년을 산 기억이 별로 없는데 2022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공포스럽기까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2022년이 오기 전에,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걸 확실하게 기억하고 기록할 방법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것도 바로 그 약간의 공포심에서 비롯되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 흔적이야말로 나를 설명해 주는 가장 간단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책과 영화만큼은 놓지 않기로 나 스스로와 약속했고, 그것을 위해 매주 한 번씩 영화 스터디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여겼다. 특히 독서는 스스로의 의지가 워낙 중요하다 보니, 나 같은 의지박약 인간에게는 확실한 결심 없이는 잘 해내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은 이렇다.
영화는 3일의 기한을 두고, 책은 5일의 기한을 둔다. 영화야 아무리 길어도 4시간 안에 다 볼 수가 있다지만 책은 쉽지 않으니 기한을 구별했다. 실행해 보면 이것저것 애로사항이 생기겠지만 미리 핑계를 대지는 않겠다. 영화는 대부분 처음 보는 것으로 골랐지만, 책은 새로운 것도 있고, 읽다 만 것도 있고, 다 읽은 것도 있다. 책도 영화도 곱씹을수록 좋으니 굳이 새로운 콘텐츠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계획표는 이렇다.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의 경우, 어제 감상을 마쳤다. 이 시리즈를 남들은 다 봤는데 나만 안 봤더라. 한 편당 기본 3시간은 한다는 것도 어제야 알았다. 중, 고등학생 때 영화관을 좋아하지 않아서 때를 놓친 것들이 너무나 많다. OTT 플랫폼의 최대 수혜자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결제한 지 2년쯤 되었을까, 따라잡으려면 멀었다. 12월 말에 읽기로 예정되어 있는 신곡의 경우 사실 오기에 가깝다. 이것도 왜 나 빼고 다 읽어 본 사람뿐인 거야? 나의 독서와 영화 감상에 불을 댕긴 감정은 시초가 질투심이었다. 남들보다 낫고자 억지로 시작한 것이 결국 취미로 정착한 경우인데, 남들에게 감사하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과 박완서 작가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만 3일의 기한을 둔 이유는 이미 한 번 읽은 적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두 작가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이기 때문에 열 번을 읽어도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올리기로 결정한 것은 이걸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본다는 시선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감시하는 사람이 있어야 제대로 해내는 나의 게으른 성정을 반영한 선택이다.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 같은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쪽은 너무 프라이빗한 느낌이 있다. 비공개라는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에…이런 거 합니다.'라고 아주 작게 세상에 이야기해 볼 수는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아무튼 시작해 볼 테니, 나에게 잘 부탁한다. 어제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다. 해내자.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