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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숨 Dec 08. 2021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대서사시 시작합니다

아 그러니까 나만 안 봤다고 

※ 영화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반지의 제왕, 이 단어를 처음 들은 날은 언제일까? 유년시절의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 걸까? 첫 시리즈인 반지 원정대의 개봉 날짜를 찾아보니 2001년이다. 2001년이라니. 내가 아직 엄마 아빠 말고는 제대로 발음하는 게 없었을 나이임을 감안하면 영화의 제목을 처음 들은 날을 상기하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반지의 제왕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적,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이라는 캐릭터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정말 열렬한 팬덤이 있었다는 소리는 아니고, 개그의 소재나 패러디의 소재로 무수하게 많이 쓰였다는 얘기다. 반에서 그 캐릭터를 좀 따라 한다는 애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웃기고 다녔고, 주말마다 했던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개그맨들은 곧잘 골룸을 흉내 내고는 했다. 마지막 시리즈로 알고 있는 왕의 귀환이 2003년에 개봉했는데 내가 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패러디의 소재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시리즈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너는 왜 안 봤는데?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렸을 때 영화관을 무서워했다. 사방이 캄캄한 데다가, 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는 곳이어서 그렇다. 지금이야 못 가서 안달인 장소이지만, 어릴 적의 나에게는 영화관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땐 영화관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없었으니 영화와 먼 어린 시절을 산 것은 당연하다.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부터였다. OTT 플랫폼이 마악 부상하기 시작했을 때 나도 그 시류에 탑승했고, 여태까지 잘 누리는 중이다. 


영화는 세계관을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나는 영화의 오프닝이 영화의 전부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오프닝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정통 판타지의 맛… 나는 너무 늦게 느꼈다.


마치 게임의 세계관 설명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간과 엘프, 드워프 같은 종족들이 이 세계에는 존재하고 그들은 그들만의 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우론이 만든 절대 반지 하나 때문에 모두 스러지고 만다는 것이 오프닝이 설명하는 전부다. 사우론은 전쟁에서 왕 곤도르의 아들인 이실두르에 의해 손가락이 잘리고, 그 때문에 절대 반지를 잃게 된다. 절대 반지를 잃으니 사우론의 형체도 마치 재처럼 변해 허공으로 날렸는데, 그때 든 의문이 있다.


왜 '제왕의 반지'가 아니라 '반지의 제왕'인가? 보통 '~의'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소유자)의 (물건)'이라고 적지 않는가. 철수의 공책, 영희의 볼펜 이런 식으로. 그런데 왜 제왕의 반지가 아닌 거지? 이후 나는 영화 감상 2시간 만에 해답을 얻게 된다. 



절대 반지 물욕 센서 켜지기 전
물욕 센서 ON. 정말 이런 언니 아니었잖아요.



그렇다. 절대 반지를 손에 넣은 것도 아니고 그냥 눈앞에서 바라만 봤는데도 이 지경이다. 혹시라도 반지를 끼게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사념체들을 보게 되는데 그 연출이 마치 본인이 본인을 잃어버리는 과정처럼 보인다(이 환각 안에서 사람들은 꼭 연기 같다. 형체가 있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흩어진다.). 이 반지를 가지게 되면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내 의지로 반지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하지만, 반지를 쥔 순간 이성이 잠식되고 내부의 은밀한 욕망이 폭발적으로 발현됨에 따라 소유자는 대개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반지가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제목이 '제왕의 반지'가 아니라 '반지의 제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나는 영화 전반부를 보고서 생각했다. '아하, 그렇다면 이 반지를 절대적으로 컨트롤하여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바꿔놓는 '제왕'이 필요한 것인가 보구나. 그게 바로 프로도 배긴스인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 순진했고… 영화의 부제인 반지 원정대의 뜻은 반지를 (파괴하는) 원정대였다. 하긴 당연하다. 힘의 저울을 심각하게 기울게 하는 반지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하겠지 누구나… 그렇다면 제목에 담긴 제왕은 뭐지? 반지를 파괴할 건데 제왕은 무슨 제왕? 


아마 그것에 대한 해답은 후편에서 얻을 수 있겠지. 아직 나는 알 수 없다. 영화는 반지 원정대 팀원들 중 몇을 중간에 삭제해버린다. 분열이 머지않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삭제시킬 줄은 몰랐다. 주인공인 프로도는 반지가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무척이나 원망한다. 그런 후회 속에서 간달프가 하는 말은 꼭 인생의 진리 같다. 사람들은 모두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고, 어쨌든 간에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만 한다고 백발의 노인 간달프는 말한다. 영화에서 머리와 수염을 치렁치렁 기른 백발노인의 말은 진리다. 프로도 또한 그의 말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정표로 사용하는 것 같다.



정말 아름답다. 비주얼적으로도 즐기기 좋다!



1편인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는 거대한 스토리적 전진을 이루었다기보다는, 아 드디어 시작인가? 하는 느낌을 남겨두고 끝난다. 2001년에 첫 시리즈를 개봉해 2003년에 마지막 시리즈를 내놓은 것을 생각하면 영화 치고는 매우 짧은 텀을 두고 개봉한 것인데, 이런 스케일의 영화를 만드는 데 고작 1년씩의 텀으로 촬영하고 편집했을 리 없으니 사전 준비가 매우 방대하고 고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나는 RPG 게임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 영화를 볼 때 게임 생각이 많이 났다. 상당히 괜찮은 파티 구성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데 힐러가 없네… 근접 딜러가 너무 많다… 이런 자질구레한 생각들을 했다. 생각해 보면 이 영화(혹은 원작 소설)를 참고한 게임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수많은 자식 문화를 낳은 원본을 볼 때면 언제나 벅찬 기분을 느낀다. 내가 드디어 이걸 보는구나,라고 느끼며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의 두근거림이 있다. 


2편을 근시일 내에 보고 또 글을 쓰도록 하겠다. 한 편당 3시간이 넘어가는 영화가 2개나 더 나를 기다리고 있다. 2시간만 넘어도 극악무도한 러닝타임이라며 불평하는 인내심 없는 면모를 명작 앞에서 좀 버려보도록 하겠다. 적어도 이건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고문하는 영화가 아님을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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