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만나다] 숨고가 만난 27번째 사람
저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지만
잡문가라고 불리고 싶어요.
숨고가 만난 스물일곱 번째 사람
프리랜서 에디터, 박효진
혹은
숨고 글쓰기 레슨 고수, 박효진
안녕하세요. 숨고에서 글쓰기 레슨을 진행하고 있는 박효진입니다.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했어요.직함은 따로 없지만, 글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일을 다 한다는 의미에서 제 스스로는 ‘잡문가’라고 부르고 싶어요. 기고부터 교정/교열/편집, 번역,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이 정도면 글과 관련된 건 다 해본 것 아닐까요?
네. 지금은 공식적으로 특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프리랜서 에디터’ 정도로 이야기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평일에는 글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 디지털 의료기기 사업 관련한 글을 교정/교열/편집했고, 외국서적 번역 전 사전 검토 서류도 만들고 있어요. 주말에는 숨고를 통해 매칭 된 1:1 글쓰기 클래스를 진행하고, 유료 멤버십 북클럽의 호스트도 맡고 있죠.
모든 대학원생들에게 글과 관련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학위논문을 작성했던 경험일 거예요. 가장즐거우면서도, 가장 끔찍한 일이죠. 논문을 쓰기 위해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어떻게 논의를 전개하고 결론을 내릴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글을 참고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을 모두 자기 손으로 직접 해내야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는 지도교수님께서 나가시던 학회에서 사전 발표를 했던 것이 기억에 더 많이 남아요. 석사과정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모이는 학회에 참석할 수 있긴 하지만, 대체로 발표는 하지 않고 행정처리를 맡아요. 모이는 분들이 다들 박사학위를 가졌거나 1~2년 안으로 받게 될 선생님들이기에 생겨난 암묵적인규칙 같은 것이죠. 그런데 그 학회의 학회장인 선생님께서 제게 발표를 준비해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인 줄 아셨던 거죠. 처음에는 당황하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마음이 생겨서 당장 준비를 시작했죠.
학생이 발표를 한다는 건 지도교수의 능력을 검증대에 올리는 순간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발표를 준비하면서 마음에 상당한 부담이 있었어요. 몇 번을 검토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한 점들이 보이고. 발표 당일에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큰일을 마친 뒤 발표 자리에 계셨던 선생님들께서 “이 정도면박사 해도 되겠는데”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제게는 최고의 칭찬이었죠.
학부 2학년 때부터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비공식적인 스터디’를 많이 꾸렸어요. 물론 학과 내에서는 다아는 사실이었죠. 그래서 교수님들 눈에도 많이 띄었고요. 이 활동이 석사 과정 진학에 많이 보탬이 되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 진학 이후에도 학부생들을 가르치는 모임을 꾸준히 만들고, 공식적으로 진행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인문학 분야는 읽고, 쓰고, 발표하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거든요. 그래서 학부생 친구들이나 멘티들이 쓴 글을 읽고 평가하고 바로잡아주는 일을 알게 모르게 계속해왔어요.
대학원은 연구기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교육자들을 훈련시키는 기관이잖아요. 교수님들도 대학원생들이 학부생들과 많이 접촉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스터디 모임을 꾸준히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십니다. 저는 그 요구를 충실히 이행했다고나 할까요.
제가 추구하는 커리큘럼은 장기적으로 글쓰기 실력 자체를 끌어올리는 수업을 하는 거예요. 우선 첫 수업은 무료 시범강의로 진행해요. 제가 마음에 들면 이후에 정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보자는 의미인 거죠. 시범강의 때는 경험으로 알게 된, 글쓰기의 기본이 되는 7가지 방법과 4가지 팁에 관한 설명을 드려요.
그 이후에 본 수업을 진행합니다. 1시간 30분을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면, 앞의 40분은 첨삭 수업입니다. 매주 최소 1000자, A4지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글을 숙제로 내드리고 그걸 교정하는 것이에요. 수강생이 준비해온 글을 제가 즉석에서 한 번 훑어 읽고, 글에서 느껴지는 인상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글의 전체적인 의도를 파악하죠. 그리고 문장 단위의 첨삭을 진행해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교정부터 단어의 배열, 표현에 대한 권장이나 추천을 해드리죠.
중간에 잠깐 쉬고, 뒤의 40분은 글쓰기 전략 자체 또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지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죠. 제가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사례나 지식도 주로 철학 쪽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돈벌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당장은 없어요. 진로에 관해서 고민하는 중입니다. 제 위치와 경력을 인정해줄 수 있는 직장이, 솔직히 말씀드리면 없거든요. 기업이나 각종 단체의 채용에서는, 전업 대학원생 생활과 유학 준비를 경력 공백으로 간주하더라고요. 처음 두어 번은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 어려웠지만, 지금은 이해하기로 했어요. 기업마다 요구하는 능력이나 인재상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제일 뒤에 남은 마지막 선택지는 박사과정 진학일 텐데, 이 부분은 일단 유예해놓은 상태입니다.
돈벌이와 관련 없는 꿈이라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사조에 대한 번역서나 책을 내는 거예요. 한국에서 계몽주의를 말하면 ‘자유/평등/박애’를 모토로 내세운 프랑스 계몽주의만 떠올리고, 또 학교에서그것만 배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사조도 그에 못지않게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왜냐면, 그 결과물이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독립과 건국,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아이디어거든요. 그런데 한국에는 이 분야와 관련된 연구서가, 제가 아는 한 한국에 딱 한 권 있거든요. 논문도 몇 편 없고요. 그래서 일종의 학문적 블루오션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어요. 블루오션은 선점하는 사람이 일인자가 되는 곳이니까, 다른 분들보다 먼저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철학의 역사에서, 교육자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또 유명한 모델은 '쇠파리'에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대한 자신의 역할을 비유한 것인데요. 쇠파리는 소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소가 잠들지 못하도록 만들어요. 소는 쇠파리를 쫓기 위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갖가지 전략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몸의기능을 알고 점점 익혀가죠. 이 비유를 보면, 교육이란 잠자고 있는 능력을 일깨우고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식상한 설명이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전해지는 걸 보면 이만큼 좋은 설명이 또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글쓰기의 측면에서 저도 '쇠파리'와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글을 첨삭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지적사항을 포함할 수밖에 없거든요. “틀렸어요”, “잘못 쓰셨어요”, “이런 표현을 쓰셔야 돼요” 같은 말들과 함께요. 그러나 제 수업을 통해 수강생분들이 자신의 글에서 단점은 가리고 감추거나 없애고반면에 장점은 최대한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 저는 정말 뿌듯할 거예요.
숨고에는
당신이 망설이고 있는
시작을 먼저 경험한
고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