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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Jul 12. 2020

존버만 5년째, 제자리걸음인 나…'이제 그만 인정하자'

포기하고 피하고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직장생활 5년 차. 

팀 내 입지, 업무영역을 공고히 다진 직장인.

본인이 맡은 프로젝트를 매니징하고 분석, 보고할 수 있는 부하직원.

일의 기초를 가르쳐주면서 후배를 끌어줄 수 있는 선배.


지금의 나는 거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존버하셨네요'

'일을 못하면서 착한 사람은 민폐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어디 다른 곳 갈 형편은 안되고 일머리가 없어도 월급 나오고 휴가 가고 그렇게 직장 생활하는 거 받아들이면서 사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회사 사람들이 흘리듯 주고받는 말들이 하나 둘 가슴에 쌓였다. 이 말들이 마음속을 파고들 때 나는 무기력했다. 그러다 조직개편 등 팀 내 상황이 변화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지난 5년 간의 직장생활이 실패였다고, 직장인으로서 실격이라는 내면의 소리가 어딜 가나 나에게 끈덕지게 들러붙어 다녔다. 좌절감에 허우적댔고 우울과 불안이 커다란 파도가 되어 내 몸과 마음을 잠식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걸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난 왜 그런 말들에 웃으면서 돌려서 대꾸하지 못한 걸까.

내가 그토록 일하고 싶었던 직장에서 이제는 버티기만 할 뿐,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게 된 걸까.



원인을 찾아봤다.

결단력 부족

주관 없이 일한 것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

보고&자기 PR 스킬 부족

솔직하지 못했던 것(내 마음을 스스로가 몰랐던 것)

자신감 결여&자포자기


팀 내 나의 포지션을 파악하고 방향을 잡고 전념했어야 했다. 그 이외의 부분은 목소리를 내거나 정리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야 했다.

나는 계약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케이스다. 우리 팀은 팀장, 부서장 포함 입퇴사가 잦았다. 팀원들 입퇴사 사이에 업무공백을 메워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팀 내 유일한 계약직이다 보니 깍두기 같은 존재로 이 업무 저 업무 걸쳐있는 게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부수적인 업무들을 내가 안고 있는 게 꽤 있었다. 일했다고 표가 안나는 일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 정규직 전환이 됐어도 내 업무영역은 모호했다.

나는 자주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곤 했는데, 그 원인을 팀 내 입퇴사가 잦은 것 때문이라 여기고 팀 분위기를 안정화하는 데 신경 썼다. 지금 돌아보니 그것도 내가 느꼈던 불안요인 중 하나였지만, 정작 근본적인 요인은 업무영역이 불분명한 데 있었다.

우리 팀은 환경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많았고 자주 영향을 받았다. 데일리한 업무 사이에 예상치 못하게 타 부서 요청업무가 끼어들 때가 많았다. 부서 간 업무조율이 쉽지 않았고 우리 팀이 요청부서의 요구에 대부분 맞춰야 했다. 주기적으로 조직개편이 되면, 부서의 지향점이 달라졌고 조직 차원에서 팀에 원하는 업무들이 생겨났다. 실무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중간관리자 역시 중간에서 힘겨워하며 퇴사하곤 했다. 나는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 이렇게 대처하곤 했다.


타 팀에서 요청이 들어왔을 때는 '원하는 거 최대한 맞춰주자. 프로젝트가 잘 굴러가서 회사에 도움이 되면 된 거지. 요청팀도 얼마나 이 일을 잘 성사시키려고 애를 쓰겠어.'

외근, 출장, 몸 쓰는 일 등 자원해야 하는 업무가 생겼을 때는 '내가 자원해서 하고 말자. 이왕 하는 거 기분 좋게 하면 좋지. 기분전환도 할 수 있잖아.'

팀 내에서 업무 분장이 모호한 일, 비정기적인 프로젝트가 떨어졌을 때는 '최대한 협조하자.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분야 가리지 말자. 니 일 내 일이 어디 있나. 일이 되게 해서 좋은 결과를 내면 된 거지. 위에서도 이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지시했을 텐데,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하자.'


돌아보면 야근하면서 힘들어하던 동료를 외면하고 퇴근한 적도, 타 팀 요청 업무에 대해서 반발하면서 업무를 조정하려 한 적도 있었다. 지원업무에 자원해야 할 때도 '이번엔 다른 사람이 갔으면 좋겠다' 눈치보기도 했고, 자잘한 잡무를 처리해야 할 때면 하기 싫어하면서 꾸역꾸역 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죄책감에 휩싸이곤 했다. 

'이게 맞는 걸까. 이래도 될까. 무슨 일이든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고 크게 봤을 때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좋은 거지. 하나하나 다 따지다 보면 끝도 없고 마음만 상하고 결국 해야 하는 상황이 많잖아. 내가 하고 나면 분위기가 편해지잖아. 반대하고 있지만 그게 맞는 건지 나도 확신이 없잖아. 그냥 하자.'


이렇게 지내다 보니 업무시간에서 주 업무에 많은 비중을 두지 못했다. '주 업무에 더 집중 해야지' 하다가도도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못 이겨 부수적인 업무를 먼저 처리하면서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기도 했다. 연차가 쌓이고 부수적인 업무를 좀 덜어내면서 업무영역을 만들어 가고 싶은데, 하기 싫다고 동료한테 떠 안기는 것 같아서 눈치만 봤다. 팀원들이 함께 상부에 해당 업무의 불필요성을 어필하면서 없애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다른 직원에게 넘어갔는데 해당 직원에게 죄책감을 갖게 됐다. 그 일은 내 손을 떠난 다음에는 몇 해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졌다.


내가 해당 업무에 대해 애정이 있음을 보여주고 어필하고 적극적으로 익혀 신뢰를 쌓아 하나 둘 맡아하면서 업무영역을 확장했어야 했다.

사수는 업무를 위해 꾸준히 자기 계발도 하고 온오프라인으로 관련 정보를 많이 찾아보고 익혀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실무에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정말 만나고 싶었던, 배울 점이 많은 사수였다. 그러나 나는 부수적인 업무들에 붙들려 있었고, 팀 내 다른 업무에도 발을 걸치고 있었다. 이를 정리해달라고 의사표현을 해야 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고 나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으로 모호한 태도로 일을 해나갔다. 나는 적극적으로 관련 업무를 익히려고 하지 않았고 내가 처리한 업무 성과가 형편없을까 봐 늘 겁을 냈다. 사수가 일부 업무를 나에게 일임하면 그때서야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수는 나에게 일을 맡기기 않았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와 보조하는 입장에서 서포트해야 할 때를 가리지 못했다. 몇 해가 지나도록 내 업무영역이 불분명한 것에 대해 불안해하던 나는, 작년 조직개편 때 우리 팀에게 부여된 신규 업무 영역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사수와의 관계도 다소 불편해졌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을 굳은 마음과 자신감을 지니고 스스로를 북돋아야 했다.

조직 개편하면서 신규 업무영역에서 협업하던 인원이 줄어 혼자 맡게 됐다. 심리적으로 의지할 곳을 잃고 섬이 된 기분이었다. 지난 한 해 겪었던 시행착오 속에서 많이 지친 데다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결과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의욕도 꺾여버렸다.


내가 했던 일들이 사소하더라도 문서화했어야 했다.

내가 했던 자잘한 업무들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 경험들을 적거나 수치화해서 남겼어야 했는데, 그저 허덕이면서 시간 내에 일을 끝내기 급급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나를 돌아보면서 방향을 점검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나 관심 업무에 대해서도 동료들이나 상사들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나 티타임 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 어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자기 장점을 어필하고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하는 사람들, 듣는 사람이 불편하더라도 내 입장을 명확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불편해했었다. 다시 돌아보니 내가 그러지 못하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팀을 위한다는 말 뒤에 숨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탓하며 체념하지 않고 불편한 순간에 솔직해지고 용기를 냈더라면, 어느 분야에서라도 깊어지려고 노력했다면 상황은 지금과는 꽤 달라졌을 것 같다. 불분명한 내 입장으로 인해 주변 동료들을 난처하게 하고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좋은 동료가 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나 자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솔직할 때, 상황을 단순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 깨달은 지금도 내 이야기를 하려면 아직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상황도, 일도, 사람 관계도 늘 전전긍긍하면서 지냈었구나 싶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다르게 일하고 대처했던 전&현 동료들이 있기에 내 이야기는 비겁한 변명일 수 있겠다. 용기 있고 자신감 있게 상황을 헤쳐나갔던 그들을 보면서, 함께하면서 많이 배웠다.


이제 이 글로써 자책을 마무리하고 스스로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싶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너는 최선을 다했어. 얼마나 힘들었니. 정말 고생했어. 실수했지만 다음부터는 다르게 하면 돼.' 


더 늦기 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다.

요즘 나는 스스로를 존중하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돌보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내 감정들을 수용하고 흘려보내면서 무너졌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있다.

느낌과 감정, 욕구를 잘 다루고 소통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방법을 배우고 훈련하면서 더불어 만족하고 공존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이제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기운내고 일어날 일만 남았다. 

실패가 남긴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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