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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Jul 10. 2020

보약 같은 한 그릇, 보약 같은 사람들

나는 한식 중에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다.

소위 '할매 입맛' '아재 입맛'이다.

어릴 적 '어른들의 음식'을 경험하면서 별다른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맛 들였기 때문일 거다.


추어탕, 순댓국, 선짓국, 도가니탕, 뼈해장국, 알탕, 닭발, 돼지껍데기...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이다.

미꾸라지를 통으로 갈고 들깨가루가 들어간 걸쭉한 갈색 국물,

돼지 창자에 피와 당면을 넣고 만든 순대와 돼지 귀, 허파, 간이 섞여 들어간 뿌연 국물,

우거지와 함께 숭덩숭덩 들어간 선지(소피), 미끄덩하고 불투명한 도가니,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만 한 생선알을 감싸고 있는 막과 핏줄. 

음식 비주얼과 제조방법을 떠올려 보면, 이 음식들이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음식 마니아들은 알 거다.

식재료 고유의 영양이 담긴 한 그릇이 바로 보약이고

그 힘을 느껴본 뒤에는 몸이 먼저 찾게 된다는 것을.


직장 근처에도 뼈해장국과 추어탕을 잘하는 집이 있다.

꿀 같은 점심시간, 뜨끈한 한 그릇으로 기운내고 싶을 때 가곤 한다.

요즘처럼 날이 더워질 때, 으슬으슬 추위가 몰려올 때, 몸에 기운이 쪽 빠질 때

한 뚝배기 때리면 위장부터 뜨끈뜨끈 해지면서 기운을 차리게 된다.

 

사내에도 '뼈해' '춰탕' 멤버들이 있다.  

이런 음식을 먹고 즐길 줄 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돼 급격히 친해졌다.


뚝배기 속 추어탕이 보글보글 끓을 때 부추를 한 움큼 넣어 숨을 죽이고

들깨 듬뿍, 산초 살짝, 다진 마늘도 넣어서 휘휘 저어서 한 숟갈 뜨면 눈이 번쩍 떠진다.

서비스로 나오는 바삭한 추어튀김 한 입 깨물고 달콤 매콤 짭짤한 낙지젓갈을 곁들인다.

요즘 건강은 어떤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사소한 고민거리들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뚝배기 그릇도 비워져 있고 내 마음 그릇에 담겨있던 고민들도 비워져 있다.


영양 가득한 걸쭉하고 진한 국물처럼 마음이 진국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는 팍팍한 사회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지치고 힘들 때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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