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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Oct 13. 2021

영화 <리틀포레스트> 꿈꿨지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직장생활에 대한 의욕을 잃고 번아웃으로 무기력하게 지내던 때,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보았다.

'와, 저 여자 대단하다. 계절마다 혼자 저 밭을 다 메고 수확해서 음식 만들어 먹고 겨울을 나는거야?'

동네 아저씨 도움을 받아서 닭도 잡고, 자전거 타고 멀기도 먼 읍내도 왕래하고 혼자서 못하는 게 없다.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그 고요함. 자연의 흐름 속에서 몰입해서 밭을 일구고 천천히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온전히 음미하며 계절을 느끼며 사는 모습이 소박하고 평화롭고 좋아보였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열망하는 느낌표 뒤에는 망설이는 물음표들이 따라붙었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으며 손도 느리고 기르기 쉽다는 다육이도 여럿 죽인...나도 할 수 있을까?'

'시골 출신인 영화 주인공이 상경했다가 도시살이에 지쳐서 도망치듯 고향에 내려왔던 건데 나도 그저 직장생활에 지쳐서 도망치려고 하는 걸까?'


생각이 많으면 행동에 옮기기 어렵다.

할까말까 할때는 하라고 하지 않던가. 지르고 보자.

회사를 나올 무렵,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로 먹고 사는 포트폴리오를 꿈꿨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버는데 수익화될 때까지 말 그대로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농사를 짓는 것.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농사를 배워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년 전 천주교 활동단체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고 있는 언니도 구체적으로 귀농에 대한 꿈을 꾸고 있던 터였다.

"천주교 농부학교에서 4월부터 수업시작 하는데, 나는 등록할 거야! 너도 해볼래? 하다가 말거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고 시작할거면 마음 단단히 먹어. 양수리에 밭이 있어서 거기서 매주 토요일에 실습한대. 같이 수강하기로 한 친구가 차가 있으니까 왕래할 때 타면 될거야."


양수리? 일일 우프(WWOOF)*체험을 하러 남양주까지는 가봤는데 양수리는 가본 적이 없었다.

*우프(WWOOF):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기농가에 가서 하루 4~6시간 일손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전 세계 143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활동.

'엄청 머네. 두물머리라는 곳이 양수리였구나. 지하철로 갈 수 있네?'

알고보니 양수리는 교통체증이 심했고 밭 근처에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농부학교에서는 수강생들에게 지하철로 오갈 것을 권했다.


그리하여 첫 날, 지하철로 먼길을 나섰다. 편도로 두 시간 정도 되는 거리.

왕십리에서 경의중앙선을 갈아타는데... 그만 용문행 열차를 놓쳤다.

그 다음 열차는 30분 뒤... 용문행, (양수역보다 앞인) 덕소행 두 가지 행선지가 섞어서 구성돼있다.


농부학교 밭은 양수리 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대로변에 있어서 찾아가기 쉽고 몸에 익으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거리다. 그러나 첫날엔 늦은 데다가 초행길이라 지도앱 켜고 찾아가니 멀게만 느껴졌다.

비닐하우스 철골에 뽕뽕 뚫린 검은 가리개로 덮은 농막이 있고 그 옆에는 컨테이너 창고, 낡고 작은 원두막이 있다. 뒤로 가면 생태화장실이 있다. 볼일 본것을 톱밥으로 처리하는데, 이게 발효되면 밭에 퇴비로 준다.  

끗하고 쾌적한 시설에만 익숙해진 눈과 몸이라 첫날부터 괜시리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농부학교를 다니면서 깨닫게 된건, 농부학교 밭에 있는 농막과 컨테이너 이런 것들이 다른 농가들에 비하면 비교적 쾌적하게 잘 만들어 놓은 부대시설이라는 거였다.


첫 날은 이번 농부학교 전체 일정을 안내하고 담당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 난 뒤 참여자들이 한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40여 명에 달하는 꽤 많은 규모의 지원자들.

개별적으로 신청한 사람들도 있지만, 60대 엄마와 청년 아들, 아버지와 대학생 딸, 정년이 지난 부부 등 함께 신청한 경우도 있었다. 30대 중반인 나는 매우 젊은 편에 속했다. 청장년층은 열 명 정도이고 대다수가 노후에 접어든 분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 또래 등산객들로 붐볐고 서서 오는 지하철에서 녹초가 됐다.

한 것도 없는데 체력이 방전된 게 덜컥 겁이 났다.

'지금이라도 얼른 그만 둘까...'

일행 오빠는 오히려 아무 것도 안해서 힘든 거라며, 뭐라도 집중해서 몸을 쓰고 하면 덜 피곤할 거라 말했다.

문득 퇴사를 앞두고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겠다는 얘기를 하자, 농사는 나이들어서 짓는 거라는, 젊어서는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해야지,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냐는 얘기가 떠올랐다.


'풍경도 좋고 농부학교 커리큘럼도 좋고 사람들도 좋은 것 같지만서도... 나... 제대로 찾아온 거 맞을까?'


농부학교를 다니는 한동안, 나는 계속 이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졌다.

그럴때마다 양수역은 개찰구에 시를 걸어두고 나를 맞았다.




<양수리로 오시게>

-박문재


가슴에 응어리 진 일 있거든

미사리 지나 양수리로 오시게


청정한 공기

탁 트인 한강변


소박한 인심이 반기는 고장

신양수대교를 찾으시게


연꽃들 지천을 이룬 용늪을 지나

정겨운 물오리떼 사냥놀이에 여념이 없는


아침안개 자욱한 한폭의 대형 수묵화

이따금 삼등열차가 지나가는 무심한 마을


양수리로 오시게 그까짓 사는 일

한 점 이슬 명예나 지위 다 버리고

그냥 맨 몸으로 오시게


돛단배 물위에 떠서 넌지시 하늘을 누르고

산그림자 마실 나온 저녁답지나


은구슬 보오얗게 사운거리는 밤이 오면 강 건너 불빛들 일렬종대로 서서


지나는 나그네 불러 모으는 꿈과 서정의 마을

마흔 해 떠돌이 생활


이제사 제 집 찾은 철없는 탕아 같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뜨겁게 속살 섞는 두물머리로


갖은 오염과 배신의 거리를 지나

가슴 넉넉히 적셔줄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처용의 마을

이제는 양수리로 아주 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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