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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Oct 24. 2021

밭도 힙할 수 있다: 봉금의뜰x그레잇테이블

농부, 요리사, 예술가가 만나 가을축제를 열다

실습 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며 밭 정리를 한창 하는데, 바람 모둠 멘토님이 농부학교 출신 선배인 김현숙 데레사 농부님 밭에서 재미난 것을 한다고 같이 가보자고 하셨다. 부용리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펼쳐지는 1500평 밭.

배추밭이 이렇게 싱그럽고 예쁠 일인가?

푯말과 유치원 의자만 놓았을 뿐인데...

밭 앞에 폐가가 있는데 전구를 달고 벽화가 그려져 있으니까 할머니 시골집 같이 꽤 정겹고 벽화마을처럼 예쁘고 사람 냄새가 난다.

제철 채소도 팔고, 자연주의 셰프가 만든 음식도 팔고, 잔나비 노래도 나오고 요 앞마당이 주 무대인 듯했다.

싱그럽고 풍성하고 편안하고 그러면서도 힙한 느낌.

농부와 요리사, 예술가가 만나 뜻밖의 힐링 축제를 만들었다.

이 밭에서 자연 농법으로 기른 제철 채소를 팔고 있었다.

멘토님이 생강청 담가 먹으라며 토실토실한 생강을 한 봉지 사주셨다.

판매하는 분이 웃으며 건네주신 동글동글 꽃파프리카도 아삭아삭 맛보았다.

채소를 사면, 환경을 생각해서 종이봉투 등에 담아준다.

터키식 모래커피도 만나볼 수 있었다.

양평 문호리에 카페를 운영하고 계시다는 사장님,

놋쇠그릇에서 모래를 달궈 그 열에 커피를 끓여낸다.

모래를 만져봐도 된대서 손을 대보니, 한낮 뜨끈하게 덥혀진 모래사장 감촉이었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맛도 향도 좋아서 사람들이 계속 이곳에 모여 있었다.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나는 디카페인을 시켰는데, 고소하고 쌉쌀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밭에서 주운 나무를 엮고 촘촘히 못을 박아 여러 털실을 가지고 태피스트리 방식으로 직물을 짜보는 체험존과 더불어, 캠프파이어도 있어서 캠핑의자에 앉아 불멍, 땅멍, 밭멍을 할 수 있다.

불도 일반적인 장작불이 아니라 수확이 끝난 들깻대를 태우는 거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끼리,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공간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각자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밭을 놀이터처럼 사람들이 자유롭게 논다는 발상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밭은 그저 농사일을 하는 장소였는데,

도시인들에게는 모든 걸 잊고 자연 안에서 먹고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구나.


곳곳에서 <그레잇테이블>이라는 푯말과 현수막을 접해서 궁금증이 생겨서 검색해보니, <그레잇테이블>은 농촌의 논과 밭에서 예술가, 농부, 요리사, 기획자, 관객이 모여 '놀고 먹고 보는 재미와 놀라움'을 나누는 라이프스타일 문화기획 프로젝트라고 한다. 한예종 예술경영 전공자 분들이 밭에서 노는 재미난 기획을 하고 싶어서 작년 10월, 데레사 농부님께 제안을 한데서 시작해, 자연에 가깝게 농사짓는 여러 농장을 찾아가 축제를 열고 있다. 클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함께 즐길 관객들을 모아서 진행하고 있으며, 농장의 건강한 '제철작물'과 신선한 햇살, 바람을 '요리사의 창작레시피'로 맛보고, 새로운 공간에 대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다양한 예술놀이로 즐기며 '농장에서 좋은 하루'를 보내는 컨셉이다.

이번에는 코로나 여파로 텀블벅 프로젝트는 취소되었지만 작은 마켓 위주로 진행되었다.


데레사 농부님은 농부학교 후배들이 왔다고 하니까 바쁜 와중에도 밭 투어도 시켜주셨다.

이 밭에는 <봉금의뜰>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데레사 농부님은 농부 생활 7년 차로, 함께 밭을 일구는 어머니 성함에서 '봉금'이라는 이름을 따오고, 향으로 벌레를 쫓는 꽃과 허브를 밭 중간중간 섞어 심은 의미를 담은 '뜰'이라는 단어를 합쳐서 이 브랜드를 만들었다.

화석연료는 멀리, 자연은 가깝게 농사를 짓자는 철학으로 트랙터, 농약, 비닐 멀칭을 하나 쓰지 않고 호미로 밭을 일구는데 군데군데 심어놓은 허브 덕분에 피곤을 느낄 새도 없단다. 자연농법에 대한 설명도 해주셨다.생강은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기에 양 옆에 키가 큰 작물을 심고, 과채류 작물에 벌레가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서 군데군데 대파와 들깻잎을 심어 서로 도움을 주며 자라게 기르고 있다고 하셨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농부만 가능한 방식이라고.

카페에서 자주 마셨던 차, 히비스커스도 자라고 있었다. 무궁화도 히비스커스랑 같은 계열이라는데 동백꽃이 하얗게 핀 버전으로 보였다. 봉숭아는 꽃향이 진딧물을 막아준다는데 씨앗도 가져가게 해 주시고, 라벤더랑 닮았지만 눈이 아리게 짙은 파란색이 매력적인 블루 세이지 꽃대도 몇 줄기 따주셨다. 오이, 애호박, 녹두, 작두콩, 쥐눈이콩, 결명자, 배추, 부추, 토마토 등 작물과 고수, 딜, 시나몬바질, 타이바질, 블랙 바질, 이탈리안파슬리, 오레가노, 레드프릴, 라벤더, 로즈메리 등 허브가 어우러져 무리무리 피어있는 향긋하고 아름다운 뜰이 참 마음에 들었다.


데레사 농부님은 '텃밭 작물 갈무리와 활용'이라는 주제로 천주교 농부학교에서 강연도 해주셨었는데, 이러한 꽃, 허브를 가공해서 차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한다고 하셨다. 수확한 작물로는 양평 소재 레스토랑 등에 납품하거나, 양수철교 밑에 격주로 열리는 두물 뭍:장터, 명동성당 앞에서 열리는 명동 보름장, 그리고 일반인에게도 꽤 많이 알려진 마르쉐라는 장터에서도 직접 소비자를 만난다고 하셨다. 수확물의 2/3은 1차 생산품 신선채소, 나머지 1/3은 말리거나 육안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2차 가공을 해서 판매한다고 하셨다.

인스타그램도 운영하시면서 봉금의 뜰을 향한 소비자들의 지원, 지지를 경험하기도 했고, 콘셉트가 있는 장터를 여럿 경험하면서 포장이나 디스플레이나 기타 등등 마케팅적인 요소 등도 자연스레 배워서 익히게 됐다고 해주셨다.


재배, 판매뿐 아니라 예술가들과 콜라보해서 밭을 쉼과 놀이의 공간으로 확장한 프로젝트까지 참여하며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도전을 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도 건강한 먹거리, 자연의 편안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을 수 있다는 것, 충분히 힙할 수 있다는 것을 <봉금의뜰>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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