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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Oct 24. 2021

유기농 도시 농업의 정석, 텃밭보급소 실습기

토종벼 손모내기, 달래파 캐기부터 소품종 다량생산 유기농 밭 투어까지

'얏호! 오늘은 가까운 곳에서 농부학교 한다.'

6월 둘째 주, 광명 우리씨앗 농장(텃밭보급소)으로 현장견학을 갔다.

매 주말마다 2시간 넘게 지하철 타고 양수리로 가다가 가까운 경기도 광명으로 가게 되니 나도 모르게 내적 환호를 질렀다.

숲길을 걷듯 살짝 들어가니 농막과 밭이 나온다.

농막에 들어갔는데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싱크대와 부엌이 있고

(음식물 퇴비 만드는 통에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갈무리해둔 작물들이 한쪽에 세워져 있고 테이블이 기다랗게 놓여있었다.

천주교 농부학교 동기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복자 소장님 강의를 들었다.


텃밭보급소는 (예비) 도시농부들을 대상으로 유기 순환 농사로 다양한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보급하기 위한 재배법과 채종법을 교육하는 곳이다. 이 실습 밭에만 작물 780종이 심어져 있다.

열매를 맺는 작물은 씨를 바로 뿌리기보다는 보통 포트에 키운 모종을 사다가 밭에다 심는데, 이곳에서는 소장님이 밭에 씨를 직접 부어 모종을 만들어서 심는다고 한다.

밭에서 직접 씨앗을 뿌려 키우면 훨씬 작물이 튼튼하게 자라는 등 이점이 있다. 포트에서 키우면 실뿌리가 엉키는데, 밭에 직접 씨앗을 뿌리면 곧은 뿌리(굵은 뿌리)가 발달한다고 한다. 포트에 키운 모종은 밭에 옮겨 심을 때 몸살을 앓는다. 엉켜있는 뿌리들이 흙에다가 뿌리를 내리는 것을 활착이라고 하는데 2주 걸린다고 한다. 2월 달 때쯤 씨를 부어서 세네 달 키우면 5월에 심을 수 있을 정도로 모종이 자라게 된다. 이렇게 키우는 걸 육묘업이라고 하는데 농가에서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육묘업법에 따르면 육묘장 바닥이 콘크리트여야 하고 비닐하우스가 100평 이상이어야 하고 그 안에서 농사를 지으면 안 된다고 한다. 농부 입장에서는 농사 지을 밭 한 뙤기가 아까운 상황인데 어찌 육묘를 위해서만 땅을 쓸 수 있을까?

우리나라 종자법이나 육묘법이 기업 위주로 제정되어, 정작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현실이 참 씁쓸했다.


 밭 투어

텃밭보급소 밭 이야기 등을 강연해주신 뒤, 밭 투어를 해주셨다.

오목조목 구역마다 풀과 작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밭을 이룬 모습이 에덴동산 같았다.


흰민들레, 사과참외, 개구리참외, 호밀, 고추, 더덕, 완두콩, 청주오이, 삼층거리파, 조선대파, 상추, 감자, 흰 당근, 소의 심장 토마토, 토종 생강 등 밭에 심겨진 작물들을 하나 하나 짚어주시면서 언제 심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설명해주셨다.

월동하는 작물들은 짚 등으로 덮어서 겨우내 얼지 않게 해서 봄에 올라오면 그다음에 씨앗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씨앗은 어떤 경우에도 한번에 다 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일부 남겨놔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아파서 농사를 못 하게 될 수도, 기후나 토양 또는 병충해 때문에 잘 안될 수가 있기에 다음 농사를 위해서 남겨놓는 것이다. 담배상추 꽃대가 올라와있었는데, 꽃대가 빨리 올라온다는 거는 그만큼 이 작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빨리 자기 후손을 남기려는 거라고.

처음 씨를 받아와서 심었을 때, 수확할 것 없이 다음 해 심을 씨앗 정도만 받았다고 하면 '이 작물이 아직 땅에 적응을 못했구나' 생각하면 된다.

먹으려고 수확하는 시점과 채종하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완두의 경우 꼬투리가 통통하면 수확해서 먹는데, 씨앗 받을 용도일 경우에는 깍지 채 바스러질 때까지 바싹 말린 다음에 수확한다. 깍지를 까서 콩을 말린 뒤 냉장 보관하다가 가을볕에 한번 더 말린다고 한다. 완두는 병이 잘 생기고 콩 안에 벌레가 안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씨눈이 다치지 않으면 발화를 한다고 한다. 벌레가 있더라도 버리지 말고 다음 해에 심을 수 있다고 한다.


 달래파 캐기

모둠 별로 미션이 있었는데 내가 속한 바람 모둠은 달래파를 캐는 것이었다.

달래파는 쪽파의 한 형태인데 쌈으로 먹어도 되고 전을 부쳐서 먹어도 되고 양념장을 만들어서 먹어도 된다고 한다. 알뿌리까지 양념장을 하면 달래보다는 약간 쓰지만 비슷한 맛을 낸다고 한다.

진흙같이 진득한 흙에 알알이 달래파가 엉겨있는데 그걸 흙과 분리해야 한다.

파뿌리가 다치면 안 된다. 주무르면 흙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남자 모둠원 한 명은 힘을 써서 달래파가 득실득실한 흙 한 판을 떠올렸다.

배정된 밭 규모는 작지만 여간 손이 가는 일이 아니었다.

다 끝날 무렵에서야 비법을 터득했다.

머리카락 빗듯이 빗어주면서 흙을 털어내니까 파뿌리가 분리됐다.

뭐든 요령을 터득하면 된다.


 보리, 밀 수확하기

다른 모둠은 보리와 밀을 베고 수확했다.

앉은뱅이밀, 참밀, 금강밀을 밭에서 키우고 있는데 마침 수확할 때였다.

우리밀은 가을에 씨를 뿌리면 한겨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면서 크기 때문에 농약 없이도 잘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밀은 우리가 먹는 모든 밀가루 음식의 1.9%밖에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우리밀을 많이 사랑해주면 몸도 건강해지고 우리밀 농가들도 튼튼해지겠지?

 


 여러 종류 상추 맛보기


올해는 열 두 품종이나 심었다면서, 교잡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세 군데에 나눠서 재배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상추를 적상추, 청상추 두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지역 이름이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달랐다.


파란꽃상추: 포기를 보면 꽃처럼 돼 있음.

너브내 상추: 포기상추처럼 생김. 잎 사이가 넓음. 너브내라는 마을에서 수집함.

조갈상추: 조가네 상추이면서 적상추여서 갈색이 난다 하여 이름이 조갈상추.

용설상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 마을에서 수집함.

치마상추: 길고 널찍하고 얇아서 치마상추라 불림. 여덟 달 상추라고도 불리는데 만생종*으로 꽃대가 늦게 올라와서 길게 먹을 수 있어서임.

바타비아상추: 미국에서 살다 오신 분이 가져온 씨앗. 외국에서는 상추를 샐러드 형태로 먹어서인지 쌉쌀한 맛이 덜하고 달큼한 맛.

*꽃대가 빨리 올라오느냐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나뉘는데 예전에는 다 조생종으로 꽃대가 일찍 올라왔다고 한다. 사람들이 늦게까지 따 먹을 수 있는 상추를 원하면서 만생종이 많아졌다.


상추마다 이름이 붙여진 유래를 듣는 것도, 미묘하게 다른 맛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었다.

상추를 뜯을 때 하얀 진액이 나오는데 락투카리움이라고 진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약성을 가지고 있다. 비닐하우스나 스마트팜으로 키운 작물에서는 그런 약성이 없고 노지에서 재배할 때만 이런 약성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상추가 포기상추, 잎상추, 줄기상추, 결구상추 네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주로 잎상추가 발달했다고 한다. 요즘은 중국에서 우엉 뿌리처럼 생긴 줄기상추가 들어와서 나물이랑 장아찌로도 해 먹는다고 한다.


 토종벼 손 모내기


우리나라 기후는 몬순 기후라고 해서 여름에 장마가 있고 끝나면 태풍이 온다.

토종벼는 성인 여성의 어깨나 허리 위만큼 올라올 정도로 다 키가 크다.

여름에 장마철 되면 꽃 피고 이삭이 여물어갈 때인데 다 쓰러지니까 개량종이 나왔다고 한다.

개량종은 대부분 무릎만큼 자란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은 종자를 보존하고 기계를 쓰지 않는 텃밭보급소니까, 토종벼를 손모내기로 심는다.

그날이 바로 이날.

내가 모내기를 할 줄이야.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주황 논 장화를 신었다.

뻘밭에 발이 빠지는 느낌이라 장화가 박혀서 어그적 댔다.

논에 들어가니 바닥이 울퉁불퉁 높낮이도 제각각이었다.

밭을 가는 고무래로 바닥을 밀고 당기면서 고르게 만들었다.

양 옆에 사람들이 말뚝 같은 것에 매어있는 줄을 옮겨가며 간격을 만들고 심는 사람들이 일정 거리로 서서 일정 간격으로 줄에 달려있는 작은 술에 맞추어 모를 두 포기 정도 심는다.

다 심으면 못줄 잡이(줄넘기는 사람)가 "줄이야"/심는 사람이 아직 못 심으면 아직이요!라고 외친다.

줄을 넘기면 또 심고 또 심고. 밭일은 혼자할 수 있어도 손모내기는 오로지 공동작업으로만 가능한 거구나 느꼈다.


 대파 모종 가져가기

삼층거리파라는 재미난 아이를 가져가게 해 주셨다.

삼단파, 삼동파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파 밑동이 월동을 하면 밑에 종구가 생기고, 생장점이 생기고, 위에 한번 또 생긴다.

종구가 몸통에 자라나서 똑 떼서 쪽을 내서 한쪽씩 땅에 심는 거다.

6월이 따는 시기여서 때마침 그 시기에 방문한 우리에게 주셨다.

장마철이 지나면 안 따진단다. 안 따진 채로 놔두면 비에 꺾이고, 그러면서 땅에 뿌리를 내려서 그대로 자란다고 한다.

소장님이 처음 삼층거리파를 심을 때 딱 세 개를 얻어와서 3년 동안 채종하고 종구를 늘리느라 맛을 못 봤다고 한다. 한두 대만 썰어 넣어도 향이 나고 굉장히 달고 맛있는 파라고 한다.

얻어온 파 종구를 내 밭에 심어봤는데, 안타깝게도 풀에 휩쓸려서 내가 모르고 뽑아버린 것 같다.



이날 실습을 하면서 잘 가꾸어진 밭의 표본을 볼 수 있었고, 유기 순환 농법으로 밭을 일구는 수고와 돌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500평짜리 농장은 올해 6년 째로, 쓰레기 더미로 방치된 곳이었는데, 좋은 취지에 공감한 밭주인이 밭을 빌려주었고 그렇게 텃밭보급소의 보금자리가 시작됐다.

이 농장을 시작할 때, 전 국민이 모두 농부가 될 때까지 소장님 역시 내 땅 가지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도시 농부로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이셨다고. (도시농부들은 자기 소유의 밭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일군 밭을 보고 동네 어르신들께서 밭이 예뻐졌다며 반겨주시고, '옛날에는 다 이렇게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기계소리밖에 안 나는데 당신들이 와서 너무 좋다'하시며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얼마 전 광명 일대가 개발되면서 밭이 팔려 안타깝게도 올해가 마지막 농사일 것 같다는 얘기가 정성스러운 밭 정경과 대비되어 서글펐다. 부동산 투자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내몰리는 상황이 비단 이 텃밭보급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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