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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Apr 03. 2021

이모의 나이




 “이모, 이모는 몇 살이야?”

 “이모? 몇 살 같아 보여?”


 일곱 살이 되더니 하람이가 나이를 물어왔다. 몇 살 같이 보이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잠깐 생각하더니 열 일곱 살? 열 여덟 살? 했다. 주책맞게 입이 찢어져라 기분이 좋았다. 왜 그런거 같냐고 또 물어보니 엄마가 스무 살이니까 이모는 엄마보다 더 어리잖아, 했다. 언니가 스무살이라니;; 하윤이와 세 살차이가 나니까 내 나이도 그쯤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다. 손가락 열 개, 10 이라는 숫자가 세상에서 제일 많다고 생각하는 하윤이는 이모 열 살이야 하면 ‘우와 진짜 많다’ 하는데 하람이는 열 살이라는 이모의 나이를 믿지 않는다. 그럼 초등학생 누구 형이랑 비슷한데 이모는 더 어른이잖아 하며 일일이 따져 물어 그보다 더 많은 숫자를 이야기 해야한다. 언니는 스무 살 나는 열 일곱, 대충 믿는 눈치다.


새삼 조카의 존재가 고맙다. 터무니 없는 열 살이 아니고 비슷한 서른이 아닌 누군가에게 열 일곱이 될 수 있어서.


 열 일곱, 단순히 어리다는 개념 보다 적은 숫자에 반가웠다. 한 해 한 해 바뀌어 오는 숫자들이 내 나이라는 것이 매년 낯설고 어색하다. 저 멀리 혼자 가버려서 그 나이를 쫓아가는데 또 가끔 버겁고 힘이 드는데 열 일곱이라니, 열 일곱 아니라 스물 일곱 이라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하람이는 한 살이라도 더 많은 형이 하고 싶어하고 나는 한 살이라도 적은 동생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게, 사람에게 가장 좋은 나이가 있다면 그건 대체 몇 살 일까?







엄마 이름이 뭐에요?

- 엄마

아빠 이름은요?  

 - 아빠


세 네 살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으로 아이들은 여지없이 본인들이 듣고 불렀던 엄마와 아빠의 이름을 크고 씩씩하게도 대답했다. 질문자가 아이들에게 재차 ‘뭐라고요?’ 물으니 ‘어엄마아’, ‘아아빠아’ 라고 더 큰 입모양으로 천천히 대답했다.
  언니가 나를 ‘000’ 부른다. 언니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윤은 작은이모에게 왜 000라고 하냐며 작은이모 이름은 작.은.이.모 라며 엄마를 보며 또 한 글자 한 글자 가르친다. 작은이모는 작은이모고 막내이모는 막내이모지! 하윤은 본인의 이름을 바꿔 부르거나 오빠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와 헷갈려하면 한글자도 봐주지 않고 고쳐 말하면서 정작 이모들의 이름은 큰 이모, 작은 이모, 막내 이모로 알고 있다. (나도 세 명의 이모들이 있는데 이름이 조금 헷갈린다. ‘병’ 돌림으로 마지막 글자가 다른데 엄마에게 물어 정확하게  좀 외워둬야겠다.)


“나 작은 이모 이름 알아. 000”


  하람이가 말했다. 조카에게 듣는 내 이름 세 글자가 괜히 당황스럽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발표 시키려고 출석부를 뒤적인 후 내 이름이 불려 졌을 때 만큼. 오늘이 몇 일이지? 묻곤 전혀 상관 없는 내 번호와 이름이 불려졌을 때의 당혹감 같은 것도. 하람이 입 밖에 나온 내 이름이 어디든 가야하는데 어느 곳에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한동안 둥둥둥 떠 있었다. 다같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나는 피식 웃고 눈만 끔뻑이곤 입 안에 든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한동안 멈춰있었다. 이모 역할로 충실한 나인데 내 이름이 불려졌을 때 나는, 작은 이모가 아니라 꼭 ‘000’를 해야 할 것 같았고 놀이동산에 인형 탈과 인형 옷을 입고 있는 사람처럼 이모역할의 조금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가면과 뭐든지 괜찮은 친절한 행동의 옷을 이제는 그만 벗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 아직은 조카들과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눈 흰자위를 보이고 혓바닥을 내밀며 놀고 싶은 이모다.


  ‘아닌데 아닌데. 이모 이름은 그냥 작은이모인데?!’ 할까 하다가 ‘응 맞아’ 라고 대답하며 떠다녔던 내 이름을 주워 담았다.


조카들이 벌써 내 이름, 나를 알고 있으니 누구의 이모, 누구의 가족으로만이 아니라 홀로 나로서 작은 일에도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생각했다. 매 교과시간 내 이름이 불려도 놀랍거나 당황스럽지 않게. 언제 어디서 불려져도 내 이름 세 글자가 이리저리 떠다니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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