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일이었다. 매년 휴가를 내서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에 휴가일정이 맞지 않아 평소처럼 저녁까지 일을 하며 보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 먹으니 생일 끝, 하루가 다 갔다.
일 년에 하루, 생일은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크다. 가을이 되면 곧 생일이니 아이처럼 좋아하기도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축하메시지와 많은 선물에 기분이 좋다가도, 답장만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낸 기억이 많다. '누구를 위한 생일인가' 의문과 함께 3-4년 전부터 카카오톡 생일을 설정하지 않았다. 첫 해에는 가족 외에 아무도 축하메시지가 안 와서 당황했고 웃겼고 약간 슬프기도 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 친구들의 뒤늦은 축하를 받기도 했다. 그다음 해부터 가족과 친한 친구들의 축하만 받고 있다. 많은 이들의 축하보다 소수의 축하에 오히려 행복하고 충만하다.
중등부 학생이 '선생님은 왜 생일 설정 안 해두셨어요?' 물은 적이 있다. 축하를 받고 싶은 사람에게만 또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과만 나누고 싶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중등부 학생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쳐다보았고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라고 덧붙였다.
일곱 살 아이와 수업 중에 아이는 오늘이 엄마 생일이라서 밖에서 저녁 먹고 왔다고 했다. 나는 무슨 케이크 먹었냐고 물었는데 아이가 '엄마가 케이크 안 하고 싶다고 해서 안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넓은 평수에 이모님들과 운전기사님도 있는 집이다. 그런데도 가족과 식사만 하시고 케이크는 원하지 않아서 하지 않는 생일이라니?! 나도 중등부 학생처럼 이해되지 않은 듯 아이를 쳐다보았다. 이후 아이 어머니가 한편으로 멋있어 보여서 나도 그렇게 생일을 보내고 싶다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내 방식의 생일.
생일 하루 전날, 남편은 12시 땡 하면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싶다며 집 근처 빵집을 돌아다녔고 마음에 드는 케이크가 없어서 다른 동네까지 돌아다니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사고 빈손으로 들어왔다. 현관문 앞에서 초를 켜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는데 못했다면서 속상하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을 내게 전했다. 생일을 1-2분 남기고 급하게 남겨준 20년 지기 친구들의 축하는 웃긴데 괜히 감동이었다.
실제로 내 생일에 나는, 퇴근하면서 먹고 싶은 조각 케이크 2개와 토퍼까지 사서 갔고 내가 초를 꽂고 내가 불을 켰다. 그리고 남편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남편은 순순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남편과 둘이서만 축하했다. 선물은 없었다.
평소처럼 일을 하고 평범한 생일을 보내며 나도 깨달아졌다. 생일만 특별한 날이 아니라 사실은 매일의 일상이 특별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축하 없이도, 선물 없이도, 케이크 없이도, 기쁘고 행복한 생일을 보낼 수 있음을. (그럼에도 소수의 지인들이 선물을 보내왔다. 값지게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