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기 프로젝트>
Das verrückte Aprilwetter(미친 4월 날씨). 독일의 4월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하다.
누가 독일로 여행온다고 하면 4월은 꼭 피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햇살 가득히 따뜻했다가도 비가 내리고, 눈이 오고, 우박이 내리는 등 10분마다 한번씩 바뀌는 날씨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사계절의 패션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초반에는 도대체 뭘 입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4월까지 패딩을 입기 때문에 이제는 아예 옷장 정리를 아예 늦게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변덕스러운 4월을 잘 견뎌내고 나면 Blitzsommer, 모두가 사랑하는 베를린의 여름이 오기 때문에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 비록 번개치듯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말이다.
4월의 시작은 만우절날 친구 B와의 산책이었다. 일 때문에 1시간 이상 늦는다고 해서 간만에 혼자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었더랬다. Komoot으로 도시 트래킹을 하기로 했는데 둘다 시작 지점을 다르게 보는 바람에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계속 엇갈려서 도대체 우리가 같은 도시 안에 있는 게 맞는 거냐고 빵 터지며 웃었다. 포르투 여행을 다녀온 B가 사온 에그타르트를 먹고 함께 슈프레 강가를 걸었다. 분명 브런치 먹을 때만 해도 햇살이 반짝거렸는데 오후가 되니 비구름이 가득 끼고 결국 비가 왔다.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카이 크리스티안슨 Kai Kristiansen에 대한 책을 완독했다. 책으로 엮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했지만 생각보다 기록된 자료가 많지 않고 다른 디자이너들만큼 알려져 있지 않아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카레 클린트의 제자로 덴마크 왕립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매그누스 올슨, 프리츠 한센 등 유수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수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만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어냈다. 책에서는 그의 작업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들과의 이야기, 결혼,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친목 관계 등 삶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주말에는 3일 동안 고양이 집사 체험을 처음으로 해봤다. 여행을 간 친구네 고양이를 봐주러 S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뭔가 에어비앤비에 와있는 느낌이라 새로웠다. 애교많은 순둥이 마루 덕분에 초보 집사는 행복했다... 이래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거구나.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을 만지면서 실컷 힐링했다. 올해 여름에 또 할 예정!
같이 사는 룸메이트 할머니에게 독일 가정식 요리인 룰라덴 Rouladen 을 배웠다. 물론 검색해보면 더 맛있는 레시피가 분명히 있겠지만 할머니 레시피로 같이 요리해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오늘은 또 뭐먹지는 전세계 누구에게나 고민인지라 같이 살다보니 서로 전혀 다른 요리를 하는 걸 보며 영감도 받고, 가끔 서로의 레시피를 따라하기도 했었는데 같이 요리한 건 처음이었다. 종종 할머니 요리에서 맛있는 냄새가 날 때마다 나는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었는데 드디어 배운 것. 만드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준비과정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 비싸기 때문에 독일 가정에서도 자주 먹는 요리는 아니라고. 다 만들어진 룰라덴에 육수를 붓고 끓이는 동안 부엌 유리창 닦는 걸 도와드렸고, 할아버지와 다함께 저녁으로 룰라덴을 먹었다. 그리고 요리책도 선물받았는데 나중에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중순 주말에는 H와 J와 함께 아주 꽉찬 1박 2일 라이프치히/할레 여행을 다녀왔다. 기분 전환 겸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 다행히 날씨도 좋았고, 계획없이 간 여행이라 부담도 없었다. 할레는 예전에도 가봤었지만 여전히 왠지 어두운 느낌이었다. 라이프치히는 다시 가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도시 전체에서 왠지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었는데 숙소도 좋았고 사람들도 친절해서 그랬던 것 같다. 과거 1813년에 나폴레옹이 전쟁을 했던 역사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라이프치히 전투의 패배로 그가 무너지면서 유배를 가게 되고 공포에 떨던 유럽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을 기념하면서 만들어진 100주년 기념탑이 이 도시에 있었다. 사실 아무 생각없이 가볼 만한 곳 찾아서 걸어갔다가 독일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했기 때문에 더 인상깊었다.
독일 내에서 여행하면 그래도 그 지역의 독일음식을 먹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사실 거의 비슷하지만 오래된 레스토랑만의 분위기가 워낙 특색이 다양해서 흥미롭다. 이번에 간 곳은 라이프치히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식당인 아우어박스 켈러 Auerbachs Keller 라는 곳이었는데 무려 괴테가 학생시절 다녔던 식당이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파우스트를 쓴 것으로 알려져 유명해져서인지 벽 한쪽에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는 벽화가 그려져있었다. 지역마다 다른 맥주를 마셔보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인데 여기서는 고세 비어 Gose Bier가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맥주라고 해서 마셔보았다. 색깔은 라거처럼 밝았지만 특유의 향이 느껴졌다.
이 외에도
- 지인들의 전시회 오프닝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2개나 열려서 다녀왔다. 매번 전시하면 가보겠다고 하고 못갔었는데 기회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오래된 친구도 만났고 새로운 친구도 알게 되었다.
- 왠만하면 여기서 겪을 수 있는 경험은 다 해보자는 주의이다. 학교 친구 Y와 이우환 전시에 다녀온 후 저녁에 다른 노래방 멤버 A와 함께 살사 파티에 갔다. 처음으로 살사 스텝을 배워봤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여름에 오빠가 오면 같이 가서 춤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 B와 J와 재즈싱어 에이미 와인하우스 Amy Winehouse의 삶을 영화화한 <Back to Black> 영화를 봤다. 그녀에 대해서는 노래 잘하는 천재 가수이자 할리웃의 문제아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깊은 감정선과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있었고,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일주일이 넘게 그녀의 음악을 찾아 들을 정도로 여운이 강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개봉한 것 같다.
변화무쌍했던 4월의 마무리도 산책이었다. 다만 이번엔 혼자서 늘 하던 동네 산책. 라일락 꽃이 예쁘게 폈고 곳곳에 달콤한 향기가 퍼져서 킁킁거리면서 햇살을 즐겼다. 요즘엔 꽃가루가 너무 많이 날려서 나도 모르게 자주 기침이 나곤 한다. 그럼 또 여기저기에서 게순트하잇 Gesundheit을 외쳐준다. 그래, 건강해야지.
요가 수업에서 목 스트레칭을 하는데 '움직이는 데 불편한 지점이 있다면 거기에서 잠시 머물러보라, 그 불편한 지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멘트가 와 닿았다. 4월엔 고민도 많았던 만큼 기분전환을 잘 한 것 같다. 덕분에 보다 가벼운 5월을 맞이할 수 있었다. 5월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