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기 프로젝트>
초여름이라고는 믿기지않을 만큼의 무더위가 시작된 베를린.
습하지 않고 공원에 드러누워있기 딱 좋은 날씨라 좋아하던 베를린의 여름이었는데 올해는 스콜처럼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그쳤다가 다시 푸른 하늘 아래 천둥 번개가 치는 등 동남아의 열대야 기후같은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천장이 높은 알트바우(Altbau : 오래된 집)인데다, 동향이라 한창 더운 오후에도 해가 들지않아 실내가 시원함을 넘어서 서늘하기까지 해서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밤에는 수면양말을 신고 잤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반팔을 입고있다. 어디선가 기사를 봤는데 올해 7월이 지구상 역사 중 가장 더운 7월이 될 거라고 해서 벌써부터 무섭다...
6월 6일은 결혼기념일 1주년이었다. 각자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맞이하는 기념일이 처음도 아니었는데 뭔가 새삼 새로웠다. 벌써 1년이 지나갔다니, 여전히 믿겨지지가 않는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 좀 더 실감이 나겠지? 우리의 결혼식날은 나에게 있어서 단언코 작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살면서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그렇게 강하게 든 적이 몇 번 없었는데 결혼식날이 그 중 하나였다. 버진로드를 걸어가면서 이토록 강한 확신이 든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해서 하나도 긴장되지 않았고 그저 행복했고 천천히 걸으면서 옆에서 손을 잡고 걷는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살폈더랬다. 정작 아빠는 내 드레스 밟을까봐 그저 조심히 걸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지만... 그 순간과 그 때의 감정은 아직도 슬로우모션처럼 내 마음 속에서 흐르고 있다. 내년 2주년은 꼭 함께 맞이하자고 다짐해본다.
함부어거 반호프에서 하는 여름맞이 오픈하우스+파티에 H와 함께 다녀왔다. 바쁘게 할 일들을 쳐내다가 잠시 숨돌리고 싶은 마음에 별 기대없이 갔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크게 기분전환이 되었다. 전시도 무료인데다 밤 10시까지 열려있어서 여유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함부어거 반호프가 소장하고 있는 요셉 보이스 컬렉션과 함께 큐레이션된 Naama Tsabar 나마 차바르라는 작가의 전시가 인상깊었는데 특히 펠트와 스트링으로 제작한 조각 설치 작품이 흥미로웠다. 관객들이 직접 벽과 바닥에 설치된 작업들을 연주할 수 있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그 진동과 음파가 공간 여기저기에서 울려퍼지며 채우는 느낌. 퍼포먼스가 4월에 있었다는데 놓쳐서 아쉬웠다. 전시를 보고 나오니 DJ부스 주변으로 사람들이 서서 맥주 또는 칵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7시부터 본격적으로 디제잉이 시작되었는데 설마 이 한 명이 혼자서 3시간을 다 채우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깨고 10시까지 그대로 달렸고, 점점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앵콜공연까지 해서 정확히 9시 55분에 마무리되었다. 아직 베를린에서 야외 클럽은 안 가봤었는데 미술관 앞뜰에서 대신 경험해본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타야 크루 L, I, K. 간만에 봐도 왠지 편하고 부담없는 친구들이다. 특히 나의 탄뎀 친구였던 L과는 이 인연으로 더욱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만났던 까페가 처음엔 조용해서 눈치를 봤었지만 곧 우리가 나누는 조잘조잘한 대화로 분위기가 덩달아 시끌벅적해졌다. 카카쉬카 (ㅋㅋ)부터 반려동물 토크, 팔씨름과 마사지까지 3시간 내내 수다를 떨다가 다음엔 보타닉 가든으로 피크닉을 가기로 기약했다. 뭔가 편하고 잘 맞는 친구들은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던 하루.
학교를 다녔을 때보다 졸업하고 나서 더 친해졌고 자주 보게 된 친구 Y가 주말 브런치에 초대해줘서 그녀의 집에 꽃다발을 들고 방문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이른 아침부터 장을 봐왔는데 정신이 없었는지 계란을 빼먹었다며 두 번이나 마트에 다녀오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고, 준비를 돕겠다는 나에게 손님에겐 일시킬 순 없다며 거실에서 고양이들이랑 놀고있으라고 해서 간만에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 호강을 경험했다. 아무래도 손님맞이 문화는 전셰계를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 그동안 집 앞의 터키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있었는데 이날 그중 몇 가지를 먹어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저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스프레드를 다 먹어볼 날이 올까?
한국어인 '언니'와 비슷한 발음이지만 터키어로는 더 어린, 작은이라는 의미의 오니(정확히는 기억안남)와 낯을 많이 가려서 노노(Nono)라는 이름의 고양이들. 의외로 노노가 나에겐 더 먼저 다가와 애교를 부렸는데, 그러자 오니가 질투하는 듯 노노를 계속 쫓아내면서 경계하는 게 보였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면 이런 일이 잦겠구나 싶었다. 둘이 치고박고 싸우다 도망가고, 온니가 테이블에 올라와 물건을 건드리자 Y가 안돼! 하고 혼내며 다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며 우리의 얌전한 고양이 마루가 생각났다.
브런치를 먹고 두스만에서 하는 인쇄워크샵에 같이 갔다. 알파벳 철자를 하나하나 끼워서 판을 만들고 롤을 돌려 종이에 찍어내는 방식이었는데 사람이 꽤 많아서인지 워크샵운영 측에서 미리 만들어놓은 판을 사람들이 돌려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식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끝나서 서점 전체를 함께 구경하고는 Y가 핀란드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보기로 기약하고 헤어졌다.
이 주는 유달리 고양이와 함께 한 날이 많았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과 회색빛 비구름이 함께 섞여 비를 흩뿌리는 이상요상한 날씨였는데 산책을 하다가 어느 집 앞에서 처음 보는 고양이를 만났다. 깨끗하고 사람을 보자마자 서슴없이 다가와 배를 까는 것이 분명 누군가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임이 틀림없었다. 잠시 앉아 배와 등을 쓰다듬어주자 고롱고롱거리더니 내 주변을 돌며 꼬리로 살랑살랑 쓰다듬는 것이었다. 뭔가 신기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 드디어 마루에게 무릎에서 식빵굽기를 선사받았다. 난생 처음하는 경험에 극도로 흥분한 나를 S가 너무 행복해보인다며 찍어주었다. 저 숨길 수 없는 입꼬리의 웃음을 보라. 뜨끈뜨끈하니 부들부들한 게 저세상 힐링이었다. 얼마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뭐랄까, 정말 잊을 수 없는 무게와(?) 감촉이었다. 심지어 노트북으로 작업 중에 자기를 봐달라며 방해도 받았다. 넘나 황송하고 감격스럽고 소중한 것...
기고글 취재 겸 힐링할 겸 겸사겸사 방문했던 하우스 암 발트제 Haus am Baldsee.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도심에서 떨어진 거리에 있어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녀왔다. 한적하게 호수 곁을 산책하다 아포가토 한잔을 시켜놓고 멍때리며 옆테이블의 대화를 무심코 흘려들었다. 그들이 최근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여기서 호수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면 휴가가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가 대중에게 오픈되어 있어 동네 주민들도 많이 다녀가는 모양이었다. 조만간 한번 더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중요한 인터뷰를 오전에 마치고 점심을 먹자마자 돗자리를 챙겨 템펠호프 공원으로 향했던 날. 30도였던 걸 무시하고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가 더워서 혼났지만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누워있으니 세상 사는 게 뭐 별건가 싶게 느껴졌더랬다. 지금 이 시간에 하고 있는 노력들과 생각들이 미래의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는 불확실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그 확실한 것에 집중하자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던 날. 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흘러가는 것. 김영하 작가님이 뉴스레터 <영하의 날씨>에서 말씀하셨듯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바로 미래.
We rip out so much of ourselves to be cured of things faster, that we go bankrupt by the age of 30. And have less to offer, each time we start with someone new.
But to make yourself feel nothing, so as not to feel anything. What a waste.
- <Call me by your name> 의 한 장면의 대사 -
전시메이트 H와 함께 또 기대없이 다녀왔던 앤디워홀 전시. Neue National Galerie는 우리집에서 접근성이 좋아 가기도 편한데 갈 때마다 전시도 항상 좋다. 워낙 유명한 앤디워홀이라 그에 대해 아예 모르진 않지만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서 새삼 그의 진실어린 기록들을 접할 수 있었다. 전시를 본 뒤 진행된 토크도 들었는데 끝날 때쯤 비가 너무 쏟아져서 본래 예정되었던 마감시간보다 미술관에 좀 더 머무를 수 있었다. 불꺼진 미술관에 있던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뭔가 감상에 젖었는지 은근히 여운이 길어서 집에 돌아와서는 넷플릭스에서 <앤디워홀의 일기>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AI로 만들어낸 앤디워홀의 목소리로 낭독되는 그의 일기를 보면서 그의 삶과 생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6월의 마지막 날 오전에는 고딩 친구 M의 생일파티를 다녀왔다. 나의 독일 유학행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M은 내 마음의 또다른 정신적 지주같은 친구이다. 아침일찍부터 갔더니 같이 아는 친구들은 없었고 M의 뮌스터 학교 친구들과 UDK 친구들이 있어 인사를 나눴다. M이 그들에게 나를 고등학교 친구라고 소개하자 다들 놀라워했다. 뭐랄까, 또다른 세계가 연결되는 묘한 기분이었는데 그 다음날 보내온 답장을 보니 M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았다. 정말이지 인연이라는 건 ...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다.
거의 2년만에 본 그녀의 딸 Y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한가지 신기한 포인트였다. 올해 다섯 살인 Y는 정말 너무 예쁘게 생겼는데 뭔가 성격은 아빠도 엄마도 안 닮은 것 같다. ㅋㅋ 예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새침하니 낯가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손내밀곤 했는데, 이제 좀 컷다고 그런지 처음부터 말도 잘하고 심지어 나한테 안겨 매달리고 트램에선 내 무릎에도 앉겠다고 졸랐다. 딸이 있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생일인데 노래는 안부르나 싶어서 M의 남편 T에게 노래를 부르자고 몰래 제안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생일 축하는 그래도 종종 해줬지만 노래를 불러주는 건 고딩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평소 조용하고 차분한 M답지 않게 생일파티를 기획한 걸 보니 이제 좀 여유가 생긴 것 같아 보여서 보기 좋았다. 정신없이 육아하던 걸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애들은 정말 빨리 크는 것 같다. 내 애라면 물론 또 다르겠지만...
그러고보니 6월 초에는 룸메이트 할머니의 생일도 있었다. 우리 결혼기념일보다 이틀 전인 4일이라 기억하기 편하다. 지난 3월 할아버지 생일 때 할머니에게 내 여동생이 주얼리 디자이너라고 했더니 어떤 작업을 하는지 궁금해하셔서 보여드렸더랬다. 마음에 들어하는 귀걸이가 있길래 생일 선물로 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동생에게 미리 부탁했고, 동생이 한국에서 택배로 부쳐줘서 미리 준비해놨었다. 내가 이 집에서 얼마나 더 함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사는 동안만큼은 잘 해드리고 좋은 추억을 쌓고 싶으니까. 여기 독일에 오면서부터 특히 누군가와 함께 하게되는 매 순간마다 취하게 되는 태도이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심해서 카드에 쓸 말을 골랐다. 작년부터 할아버지 건강이 많이 안 좋았어서 할머니가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셨다. 몇 번의 위기를 넘기면서 왠지 할아버지가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여서 안타까웠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그냥 옆에 있어드리는 것. 그동안 마음 고생해서 너무 고생많았다고, 이제 막 결혼한 신혼으로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귀걸이를 보며 소녀처럼 좋아하던 할머니는 편지를 읽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너무 고맙다고 울먹거렸고, 덩달아 나도 그동안의 일들이 떠올라 목이 메었지만 애써 억누르며 토닥토닥 해드렸다. 그 어디든 사람 사는 건 똑같다. 기쁨, 슬픔, 사랑, 죽음, 그리고 감사함도.
드디어 천천히 오르던 계단의 끝에 있는 다음 관문 앞에 다다른 듯한 6월이었다. 초반보다 비교적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느낌이다. 인생의 목표가 어떤 상황에서든 여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데, 왠지 그런 '척'이라도 하다 보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지금까지 여유로운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해왔지만. 사실은 나도 겉으로 보기보다 꽤 크게 동요하는 사람이고, 심장이 쿵쿵 울리도로 긴장도 하고, 초조하고 불안해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덜 초조하고, 덜 불안하다. 태풍 속의 눈일까 싶지만. 그러면 뭐 어떠랴. 내가 늘 바라던 대로 여유롭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처럼 조금은 불안하게 흔들릴 지라도 천천히 걸어가면 되겠지. 그러다 보면 어딘가든 내가 그리던 비슷한 미래 언저리에 닿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