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오해로 완성되는 대화

오해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by soominC

본질적으로 대화는 오해를 통해 완성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만난다고 믿지만, 실은 각자의 언어를 통해 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내 안에서 번역된 무언가이고, 당신이 듣는 순간, 그것은 다시 당신의 언어로 재번역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내 안에 저장된 사랑의 이미지들을 꺼낸다. 내가 겪었던 사랑, 읽었던 사랑, 상상했던 사랑. 그것들이 뒤섞여서 나만의 해석으로 사랑을 속삭인다. 그 역시 그만의 기억과 경험으로 직조된, 완전히 다른 질감의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같은 단어를 매개로 만났지만, 실은 각자 다른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오해하면서 사랑하고, 오해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만약 내가 그를 완벽히 이해한다면, 그는 내 안에서 하나의 개념으로 고정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그는 내게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우리의 대화는 진실의 도달이 아니라 오해의 연속이다.



대화란 진리의 교환이 아니라 신뢰의 행위다. 나는 그가 내 말을 오해할 것을 알면서도 말하고, 그는 내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듣는다. 이 상호적 무지(mutual ignorance)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묶는다. 완벽한 이해는 타자성의 소멸을 의미하고, 타자성의 소멸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우리의 대화가 오해로 완성된다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서로에게 타자로 남아 있다는 증거이며,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말을 걸 수 있다. 이해의 불가능성이 대화의 가능성을 낳는다.


물론 이 엇갈림은 때로 뼈아픈 고독을 남긴다. 나의 가장 절실한 언어가 그에게 닿지 못하고 굴절될 때, 우리는 각자 절망한다. 그러나 바로 그 막막함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다시 말하게 한다. 이미 투명하게 다 안다면 굳이 애써 마음을 설명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채워지지 않는 그 빈틈이 있기에, 우리는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화는 일종의 합의된 착각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말한 것과 내가 이해한 것 사이의 간극, 내가 의도한 것과 그가 받아들인 것 사이의 차이—이 간극들이 쌓여서 우리만의 독특한 관계의 언어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진실의 정확한 전달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제3의 의미 체계다.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만의 세계를 꿈꿀 수 있다.


우리의 대화 속 오해라는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성숙한 관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겠다는 환상을 내려놓고, 대신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 아름다운 착각을 인정하는 것. 우리의 대화가 오해로 완성된다는 것은, 결국 관계란 진리의 공유가 아니라 의미의 공동 창조라는 뜻이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서로에게 도달하려 하고, 그 시도 자체가 우리를 연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