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2 칸트_보편을 꿈꾸는 취향

같아지고 싶은 마음의 위험성

by soominC

<철학적 고찰 Series 1_E01 – Prelude>


매력적인 사람을 볼 때면

그의 취향을 몰래 훔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훔친 그 매력을 내 안에 새기고,

그로써 내 것으로 빚어진 그 취향을

다시 그에게 환원하고 싶다.




그런데 칸트의 눈으로 보면, 이 욕망은 단지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다. 우리는 누군가의 취향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나도 그걸 좋아해”는 종종 “그건 좋아야 해”라는 요구를 슬쩍 포함한다. 칸트가 말한 미적 판단은 사적인 기분이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보편적 동의를 요청한다. 취향은 가장 개인적인 듯하면서도, 가장공적인 언어를 갖는다.




1. 취미가 아니라 판단 ― “좋다”는 말은 은근히 모두를 부른다


칸트에게 “아름답다”는 판단은 단순한 취향 고백이 아니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동의를 요구한다. 내가 “이건 좋아”라고 말할 때, 나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도 그렇게 느껴야 하지 않겠어?” 이상하게도 취향은 개인의 감정인데, 표현되는 순간 공공의 장으로 나온다.


그래서 그의 취향을 훔치고 싶은 마음에는, 그와 같은 세계를보고 싶다는 욕망이 담겨 있다. 같은 대상을 두고 같은 감각을 나누고 싶다. 취향이란, 결국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 “함께 감탄하고 싶은 기쁨”에 가깝다.


• 미적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보편적 동의를 요청한다

• “좋다”는 말은 은근히 타인을 같은 자리로 부른

• 취향은 사적 감정이면서도, 동시에 공적 언어다



2. 무관심한 쾌 ― 사랑의 이익과 취향의 쾌락은 섞여버린다


칸트는 미적 쾌를 “무관심한 만족”이라 부른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쾌는, 소유하거나 이용하려는 욕망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애에서 취향은 종종 이 원칙을 흔든다. 나는 그 취향을 “아름답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취향을 통해 그에게 가까워지고 싶다는 이해관계에 휩쓸린다.


그래서 질문이 생긴다. 내가 정말 그 취향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아니면 그 취향을 통해 사랑을 얻고 싶은가. 칸트는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취향의 언어는 순수한 감탄처럼 들리지만, 사랑의 장에서는 쉽게 전략이 된다.


• 칸트의 미는 무관심한 쾌를 이상으로 삼는다

• 연애에서 취향은 쉽게 이해관계와 섞인다

• 감탄과 전략을 구분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3. 공통감(sensus communis) ― 취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의 감각이다


칸트가 말한 공통감은 “상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느낀 쾌가 타인과도 공유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감각이다. 아름다움은 사적인 감정인데도, 우리는 타인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거 봐.” “이거 들어봐.” “너도 알 거야.” 이 말들은 취향이 가진 이상한 사회성의 표현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취향을 훔치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그 사람과 같은 공통감의 세계를 살고 싶다는 욕망일 수 있다. 취향은 일치의 도구다. 취향이 맞는다는 말은, 감각의 리듬이 맞는다는 말이고, 그 리듬이 맞을 때 우리는 ‘외로움이 덜하다’고 느낀다.


• 공통감은 개인 감정을 공유 가능한 것으로 믿게 하는 힘

• 취향은 관계의 리듬을 맞추는 동조 장치가 된다

• “취향이 맞는다”는 건 감각의 외로움이 줄어드는 경험이다




4. 취향의 규범성 ― “내가 좋아해”가 “그래야 해”로 변할 때


미적 판단은 강제할 수 없지만, 묘하게 규범처럼 작동한다. 칸트가 말한 보편성의 형식이, 연애에서는 쉽게 압력으로 변한다. 취향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맞춰야 한다”로 바뀌는 순간, 취향은 다정함이 아니라 요구가 된다.


그래서 그의 취향을 훔쳐 돌려주려는 행위는, 두 얼굴을 갖는다. 하나는 함께 감탄하고 싶은 다정함. 다른 하나는 같은 감각을 강요하며 관계를 안정시키려는 욕망. 칸트는 그 경계를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취향은 합의를 꿈꾸지만, 합의가 강요로 변하는 순간 취향은 폭력이 된다.


• 취향의 보편성은 연애에서 쉽게 압력/기준이 된다

• 공유는 다정함이지만, 강요는 관계를 마르게 만든다

• 취향의 윤리는 “같아짐”이 아니라, 같아지려는 욕망의 절제다



5. 출구 ― 보편을 꿈꾸되, 타자의 불일치를 존중하기


칸트 이후의 취향은, “보편적 동의”를 꿈꾸되 강제하지 않는 태도에서 성숙해진다. 아름다움은 함께 말하고 싶지만, 함께 말하지 못하는 지점도 있다. 그 불일치를 견디는 것이 취향의윤리다. 내가 느낀 감탄을 건네되, 상대가 다른 감탄을 할 자유를 남겨두는 것.


그러니 출구는 이렇게 정리된다. 취향은 공유를 꿈꾸지만, 사랑은 불일치를 견딘다. 같은 감각을 요구하기보다, 서로 다른감각이 만났을 때 생기는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그때취향은 관계를 가두는 기준이 아니라, 관계를 넓히는 대화가 된다.


• 보편을 꿈꾸되, 강제하지 않는 태도

• 불일치를 견딜 때, 취향은 기준이 아니라 대화가 된다

• 취향의 성숙은 “합의”가 아니라, 자유와 공유의 균형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