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익함의 풍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대화

by soominC

우리는 대화에 목적을 부여하려 한다. 정보 교환, 문제 해결, 관계 개선. 그러나 가장 깊은 친밀감은 종종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다 갔네’라는 순간에 발생한다. 쓸모 있는 말은 도구다. 그것은 세계를 재단하고 분류하며 우리를 생산의 주체로 만든다.


반면 무익한 얘기는 우리를 그저 ‘있음’ 속에 머물게 한다. 친구와 카페에 앉아 날씨 얘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냄새로 넘어가고, 다시 지금 마시는 차의 온도로 미끄러지는 대화. 이 대화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는 삶에서 잠시 해방된다.


장자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음의 쓸모를 설파했다. 거대한 가구가 될 수 없는 구부러진 나무가 천수를 누리듯, 당장의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마음의 쉼표가 된다. 무익한 얘기는 존재의 여백을 확보하는 행위다. 말 사이에 숨 쉴 틈을 남겨두며 단어들이 제멋대로 춤추게 내버려 둘 때, 우리는 비로소 도구적 인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주체로 서게 된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여백'은 채워진 공간만큼이나 중요하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색채보다 그사이의 빈 공간이 주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듯, 삶의 맥락을 완성하는 것은 기능적인 문장들이 아니라 그 사이를 메우는 싱거운 농담과 날씨에 대한 대화들이다. 수다는 언어의 경제적 기능을 정지시키고, 언어가 가진 유희적 본능을 회복시키는 축제와 같다.


우리가 무익한 얘기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관계의 '온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보 공유를 위한 대화는 차갑고 명확하지만, 아무런 이득이 없는 대화는 따뜻하고 몽롱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밤을 지새우며 나눈 이야기 중 다음 날 기억에 남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무력한 말들이 서로의 사이를 얼마나 촘촘하게 메워주었는지를 상기하면, 무익함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치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본론만 남은 삶은 요약본만 읽은 소설처럼 건조하다. 소설의 위대함이 줄거리가 아니라 묘사되는 풍경과 인물의 사소한 습관에 있듯, 삶의 풍요로움은 무익한 얘기들이 만들어내는 곁가지들에서 비롯된다. 무익함은 낭비가 아니라, 삶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지탱하는 풍성한 디테일이자 사랑의 구체적인 형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