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생은 코미디

유머라는 권력, 부조리 앞의 품격

by soominC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은 중요한 내각 회의나 의회 일정에 종종 늦곤 했다. 어느 날 그가 회의에 한참 늦게 도착하자, 좌중의 분위기는 다소 경직되어 있었고 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처칠의 지각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때 처칠은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인과 말다툼을 하느라 늦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내가 옳았다는 것으로 끝났지요. 하지만 아내는 나를 용서해 주기로 했습니다.”


긴장된 회의실에 웃음이 터졌다. 전시 내각의 무거운 공기가 한순간에 풀어졌고, 처칠은 자신의 실수를 농담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단순한 기지가 아니라 유머라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미셸 푸코가 말했듯 권력은 단순히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무언가를 '생산'하는 힘이기도 하다. 처칠의 농담은 비난의 화살을 친밀감으로 재생산했고, 적대적 분위기를 협력적 분위기로 변환시켰다.


유머는 일종의 권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위로부터의 강제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동의를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권력이다. 재미있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쥐는 것과 같다. 처칠이 스스로를 낮추며 “용서받았다”고 말할 때, 그는 역설적으로 더 공고한 권위를 얻었다. 스스로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여유야말로, 자신이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지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유머를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로 분류한다. 억압이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이 현실을 거부하는 것과 달리, 유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견딜 만한 크기로 변환시킨다. 처칠은 지각이라는 결례를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부부 관계'라는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맥락 속에 재배치함으로써 지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자아가 냉혹한 세계를 다루는 품격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유머의 태도는 개인의 심리를 넘어 실존적 저항의차원으로 확장된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읽히는 이유를 떠올려보자. 구원은 오지 않고 의미는 부재하지만, 인물들은 끊임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알베르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인간'의 표상이 바로 이것이다. 의미 없는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 앞에서도 크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운명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위엄 있는 저항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때로 너무 차갑고 엄혹하여 웃음을 잃기 쉽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인생은 코미디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극적인 사건조차 시간이 흘러 회상하면 웃음 짓게 되는 에피소드가 되듯, 우리의 고통도 기억 속에서 형태를 바꾸어 결국은 웃음을 허락하는 서사가 된다. 오늘의 고통도 예외가 아니다. 그걸 믿는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현실이 자신의 전부가 되는 것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살 때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웃긴 것도 쓸모다—아니, 어쩌면 가장 강력한 쓸모다. 미소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용기 있는 태도이며, 농담은 진실을 숨기는 가면이 아니라 진실을 견뎌내기 위한 방패다. 행복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오늘의 균열 속에서도 기어이 웃음의 조각을 찾아내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결국 인생은, 비극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끝내 코미디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