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스킨십의 필요성
밥은 따뜻해야 했다.
밥이 차가우면 먹는 의미가 없었다.
계속 밥을 데폈고 라면 국물은 남김없이 먹어야 했다. 국물의 온도가 위에 닿는 순간 나는 조금 살 것 같았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편해서 그랬었을 거다.
스페인 남자, 인도네시아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만 3세 딸아이는 꽤나 단란한 가족으로 보였다.
스페인어를 한국에서만 배웠던 내가 그 가족과 함께 산다면, 생활 속 스페인어를 다양한 수준으로 듣고, 말하면서 편하게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특히, 별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아이와 잘 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달 뒤인가, 한 스페인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서 그 집을 선택한 나의 이유는 깨져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한 가족이 아니었고, 딸과 아빠, 딸과 엄마의 사이만이 존재했다.
여자는 집을 나갔고, 남자는 이제 그 여자를 볼 수 없을 것이라 했지만,
여자는 딸을 데리고 종종 오더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다시 집에 들어왔다.
그렇게 그 가족은 풍파를 겪으며 지쳐갔고, 내게 눈칫밥을 차려 주곤 했다.
여자는 정이 많았지만 생활력이 강한 편이었다.
남자는 착하지만 예민한 편이었다.
여자는 처음에 부엌 찬장에 있는 것들을 편하게 써도 된다고 했었다.
소금, 올리브 오일, 후추 등을 편하게 쓰곤 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을 때였을까,
"소금이랑 올리브 오일 같은 건 마트에서 사서 쓰는 거지?"라고 여자가 물었다.
그때부터 그 찬장 위 식료품은 건드리지 않았다.
남자가 세탁기는 이렇게 돌리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같이 사는 한국인 언니와 같이 세탁하면서 남자가 알려준 <섬세한 세탁 모드>로 세탁을 돌릴 때도 있었다.
방에 있었을 때였을까, 여자가 불렀다.
"나와볼래?"
"세탁기는 1시간 기본 세탁 모드로만 돌려야 해."
Gastos Incluido, 방세에 수도 및 전기세는 포함되어 있었지만, 둘이서 함께 돌리는 것은 기본이고,
1시간짜리 기본 세탁 모드로 세탁기를 돌릴 때에 한해서 임을 깨달았다.
남자가 새벽 근무이기에 아침에 문을 조심히 여닫아줬으면 한다고 부탁을 받았었다.
알겠다고 했고, 늘 유의했다.
별의 이름을 닮은 아이는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소리 지르면서 울었다.
밤에는 늘 남자의 고함 또는 텔레비전 소리가 사잇문 3개를 거뜬히 넘으면서 별과 함께 귀에서 반짝거리곤 했다.
남자가 없을 때는 여자가, 여자가 없을 때는 남자가 예고 없이 나를 불러 내었다.
- 다른 한국인 언니가 밤에 불을 끄지 않았고, 쓰면 안 되는 반찬통을 썼다.
- 키친타월은 써도 되지만, 프라이팬을 닦는 용도로는 안된다.
- 주방도구가 사라졌다.
이외에도 올바른 청소 방법 시연 등 다양한 주제가 있었다.
그러면서 둘은 모두 내게 말했다.
"같이 사는 다른 00보다 네가 스페인어를 더 잘하니까 너한테 다 말하는 거야."
눈칫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방문 앞 발소리가 들릴 때 누군가 노크를 할까 봐 긴장하곤 했다.
더 이상 별을 닮은 아이를 마냥 귀여워할 수 없었다.
여자건, 남자건 주방에 누가 있을 때는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 시간을 넘겨 혼자 요리한 뒤 밥을 먹었다.
따뜻함을 속에 밀어 넣을수록 허기가 밀려들어왔다.
정말 턱 끝까지 몸이 채워져 있을 때 즈음, 숟가락을 내려놓곤 했다.
텅 비어버린 마음이 이내 몸집을 불릴까 봐 무서웠으니까.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다.
사랑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체온에 조금이라도 닿고 싶은 것일 거라고.
스페인 집에서의 나는 음식을 사랑했다.
사람의 온기 대신, 음식의 따뜻함에 조금이라도 닿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니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맛있었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