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6 서울의 현실

by 들숨날숨

원래 여왕은 제일 예뻤더랬다.

백설공주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눈치 없는 거울은 백설공주가 점차 크자 백설공주가 제일 예쁘다고 답했다.

아니, 사실은 거울이 눈치가 없다기보다는, 여왕이 눈치가 없던 것일 수도.

"뻔히 나이도 훨씬 어린 백설공주가 더 예쁜 걸 모르나. 어떻게 그걸 물어보지? 여왕 눈치 좀 챙겨야 해."

거울이 말했다.

여왕은 불안해졌고, 점차 초조해졌다.


피부 탄력에 좋다는 연어를 매일 아침 대령해서 먹었으며, 노화 방지에 탁월하다고 받은 사냥 전리품인 사슴을 끓여먹기도, 술에 넣어먹기도 했다. 사람들 몰래 늙지 않는 약을, 예뻐지는 약을 만들어달라고 연금술사들을 줄지어 세워놓기도 했었다. 점차 연어들은 씨가 말라갔고, 사슴은 점차 숲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조금이라도 효과를 보이지 못한 연금술사들은 목이 잘려나갔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왕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연어가, 사슴이, 연금술사약이 동이 났을 무렵, 여왕의 초조함은 퀼트처럼 속속들이 엮였고, 가슴에 뭐가 얹힌 듯 답답했다.

여왕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이젠 백설공주를 죽이고 싶었다.

언젠가부턴가 여왕의 거울에는 여왕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서울은 종종 거울 같다.

파리와 바르셀로나에 비교했을 때 단순히 한국의 수도라서기 보다는,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에 현실 파악이 좀 더 잘된달까. 외국에서처럼 만 나이로 어떻게 비벼볼 수도 없고, 같은 나이의 비슷하게 생긴 또래들이 비슷한 무언갈 하는 모습이 너무 잘 보인다. 몇 살에는 취업을 해야 하고, 몇 살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또 몇 살에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렇게 삶의 공책은 공백 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어야 한다. 공백을 답하지 못하는 순간, 현실감각 없는, 절실함이 떨어지는 요즘 청년처럼 보일 수도 있달까. 갑자기 초조해진 나는 노력하고, 사람들도 노력한다.


이쯤이면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한 날, 곱게 단장한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서 물어본다.

"서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예. 당연하게 백설공주 입죠."


시종 대신 직접 백설공주의 목을 베어야 속이 시원하겠다며, 여왕은 제일 날이 선 칼을 골라 전용 백마를 타고 힘차게 달렸다. 그렇게 백설공주 앞에 섰다. 백설공주는 말 그대로 예뻤다.

눈처럼 하얀 피부. 앵두처럼 붉은 입술. 칠흑 같은 검은 머리. 참으로 예뻤다.

그렇지만 백설공주도 여왕에게 쫓겨서 피곤했는지, 눈가에는 기미가 낀 것 같았고, 턱 끝에는 뾰루지가 난 듯했다. 안도하려던 찰나, 그래도 여왕보다 예쁜 건 틀림없었다.

칼을 번쩍 드는 순간, 방 안의 거울이 떠올랐다.

백설공주를 죽여도 내일은 신데렐라, 모레는 라푼젤이 제일 예쁘다고 말할 것 같았다.

오늘은 백설공주, 내일은 신데렐라, 모레는 라푼젤까지. 언제까지 계속 죽이러 다녀야 하나, 여왕은 갑자기 막막해졌다. 게다가 꿈속에서 어렴풋이 본 듯한, 인근 겨울왕국에서 그렇게 예쁘다는 금발의 여자까지.

"어후."

한숨이 단전부터 차오른 여왕은 말을 돌려, 성으로 향했다.


방 안에 들어서자, 거울은 이제 물어보지 않아도 미리 백설공주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였네. 네가 문제네."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었다.

"누가 네 주인인 줄 아니? 나야. 내가 너 돈 주고 산 거야. 너는 내 거울인데. 어? 맨날 다른 사람 보여주는 게 말이 되니?"

여왕은 칼을 빼들어 거울의 중심부에 박아 버렸다.

거울은 힘쓸 새도 없이 조각으로 흩어졌다.

여왕은 대장장이에게 새 거울을 주문했다.

현실 100% 반영 거울 말고, 약간의 왜곡이 있더라도 예쁘게 나오는 아이폰 카메라 같이 만들어 달라고.

거울이 이전의 거울을 닮아갈 세라, 여왕은 매일매일 새 거울로 갈아 치웠다.

새로운 거울 앞의 여왕은 여태까지 관리를 잘해선 지도 몰라도, 꽤나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