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시계가 멈추는 것을 보지 못했다.

#14 서울의 인연들

by 들숨날숨
오후 3시가 되었을 즘에서야 시계가 멈췄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은 오랜만에 개운하게 일어났고, 11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에 지금이 11시구나 했다.

주말 빨래를 하고, 아침을 다 먹고 난 뒤에 다시 시계를 봤다. 11시였다.

서울은 잠결에 시계를 잘못 봤었구나 싶었다. 아직 아침이라는 생각에 서울은 이불 속에 들어가 개운했던 그 잠의 한 귀퉁이를 잡아보려 했다. 어느 정도 자고 일어났을까, 서울은 그보다 상쾌할 수 없었다.

환한 햇살에 옷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공원에서 시끌벅적 놀고 있었다. 공원에 있는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서울은 그렇게 오래 잤나 보다 했다. 산책 겸 장을 보고 들어온 서울은 시계를 보았다.

여전히 11시였다. 서울은 시계가 멈췄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어느 순간 끝이 나버리자, 서울은 혼자 과거를 더듬으면서 추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1시로 보였던 12시, 1시, 2시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시계가 오전 11시부터 멈췄던 건지, 전날 밤 오후 11시부터 멈췄던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 이별한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이별은 유독 더 많이 아프다. 서울에서 우리는 유독 우리가 마냥 영원할 것처럼 굴기 때문이다. 10년 뒤를 이야기하고, 환갑잔치에 같이 있을 거라는 둥 이야기하면서 영원한 관계를 다짐한다. 끝날 줄도 모르고, 또 끝난다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관계 앞에 우리는 마냥 해맑다.




서울은 소리 내어 울었다. 아침이었는지, 점심이었는지도 모를 시간들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시계가 멈춘 뒤 한참 뒤에서야 알아챈 것이 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이머가 맞춰져 있던 시계들이 멈췄을 때 아주 태연하게 약을 갈던 서울은 어디 가고 없다. 타이머가 맞춰진 시계들 앞에서 조금 더 겸손했고, 그 끝을 조금 더 준비했던 서울은, 차라리 이제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 낫다고 말했다.




유통기한 임박 상품이 낫다고 말하면서도 서울은 어느샌가 고물상이 되어갔다. 끝없는 허망함에 종량제 봉투에 다 묶어버렸다가도, 결국 버릴 수 없었다. 그 많던 시간들은 곧 서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수많은 이별 끝에 울지 않게 되었다. 애써 버리려고 종량제 봉투를 사놓지도 않게 되었다. 시간을 되돌려보면서 "왜? 갑자기?" 라고 그 끝을 다시 가늠해보려 하지도 않았다. "싫어. 그럴 수 없어." 라고 구태여 붙잡지도 않았다. 그저 시계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언젠가 갈아낄 수 있는 배터리가 있다고 하면, 그때 한 번 먼지를 툭툭 털어볼 생각이었다. 서울은 그 일대의 소문난 고물상이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수많은 시계들의 시침과 분침을 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개중에 어떤 시계는 다시 간다고도 했고, 새로 산 어떤 시계는 배터리가 끊임 없이 준비되어 있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