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클라시코, 축구장에서 엉덩이를 꿀렁거리자.

#21 바르셀로나, 축구 그 이상

by 들숨날숨


"엘 클라시코? 메시도 없고 호날두도 없는데?"


호날두의 유벤투스 이적, 메시의 발목 부상으로 인한 결장. 더 이상 세기의 선수들의 대결은 없다고 했다. 심지어 그날은 비까지 예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경기는 64년 만의 결과와 함께 그 해 최고의 경기로 꼽힌다.


Tot el camp És un clam
온 경기장이 함성으로 차있다

[D-4] 경기는 4일 전 티켓팅부터 시작된다. 캄프 누는 유럽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지만, 엘 클라시코는 유럽만의 것이 아니다. 약 십만 명이 들어설 수 있는 그 경기장의 가장 끝 좌석을 잡아도 20만 원이 족히 넘지만, 그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엘 클라시코란 흡사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 정도 된다. 그 황금 열쇠를 따기 위한 티켓팅은 치열하다. 티켓 예매 대행 사이트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뛰고 있었다. 선수로 떨리는 마음으로 티켓팅을 하기 전 좌석별 시야와 인터넷 후기를 보며 내 앞에 펼쳐질 예매를 연습했다. 그렇게 얻어낸 엘 클라시코 티켓, 이제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때였다.


Som la gent blaugrana
Tant se val d'on venim Si del sud o del nord Ara estem d'acord estem d'acord
Una bandera ens agermana.
우리는 블라우그라나*(붉은색과 파란색 조합의 FC 바르셀로나 색)의 사람들
우리의 출신이 어디든 중요치 않아, 남쪽이든 북쪽이든, 우리는 하나가 되지
하나의 깃발 아래 우리는 형제로 뭉친다.

[D-3] 블라우그라나를 몸에 담기 위해 의복을 찾아 나섰다. 카탈루냐 광장에는 등번호 10번 메시의 이름이 박힌 가품 티셔츠들이 길거리 바닥에 깔려있었다. 그 틈에서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공식 매장으로 향했다. 가격은 비쌌지만, 맑은 정신으로 FC 바르셀로나의 블라우그라나 옷을 고르고, 등판에 10번과 이름을 박고서야 끝이 났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옷이 중요하진 않았다. 그저 기념비적인 행사를 기념하고픈 의식이었을 뿐이다.


Jugadors Seguidors Tots units fem força
Són molts anys plens d'afanys Són molts gols que hem cridat.
I s'ha demostrat s'ha demostrat Que mai ningú no ens podrà tòrcer.
선수들과 팬들, 모두 하나 되어 강해지고
희생으로 가득 찬 많은 시간들, 우리가 울부짖었던 많은 골들
그리고 보여줬지, 그 누구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D-2] 이제 정신이 엉덩이로 집중될 때였다. 바르셀로나의 팬 애칭은 '꾸레(Culé)', 엉덩이라는 뜻이다. 바르셀로나 경기를 보기 위해 관중석이 미어질 만큼 사람들이 모였고, 관중석 밖까지 엉덩이로 걸터앉아 밖에서 보면 엉덩이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꾸레'는 그냥 경기를 본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따뜻하게 퍼진 엉덩이가 아니라, 힘껏 집중한 엉덩이가 되고 싶었다. 맑은 엉덩이의 정신이 깃들기 위해 공식 응원가 Cant del Barça를 반복 재생했다. 까딸란 어 가사 해석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그 가사, 리듬, 박자를 몸과 마음에 새겼다. 혀에 가사가 어느 정도 붙기 시작할 즈음, FC바르셀로나의 역사를 찾았다. Més que un club, 그제야 단순히 잘하는 축구 클럽이 아닌, 클럽 그 이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느껴졌다. 스페인 내전, 독재를 거쳐온 역사와 시민들이 직접 만들고 키워 나가는 협동조합 운영. 유독 눈부신 그들의 자부심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응원 카드 섹션이 완성된 Camp Nou]
Blaugrana al vent Un crit valent
Tenim un nom que el sap tothom
Barça, Barça, Barça!
바람에 흩날리는 블라우그라나, 용맹스러운 함성
우리는 이름을 갖고 있지, 모두가 아는 그 이름
바르사, 바르사, 바르사!
- Cant del Barça

[D-DAY] 지하철 역에 내리자 온통 블라우그라나였다. 어디로 갈지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블라우그라나를 따라 움직였고, 캄프 누(Camp Nou) 경기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페이스 페인팅을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고, 중계를 하기도 했으며, 내부 매장에서 옷을 보기도 하였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모두 열띤 얼굴들이었다. 입장 시간이 되자 자리를 찾아 움직였고, 우리는 한 꾸레로서 주위 사람들과 말을 텄다. 꼬꼬마 시절부터 캄프 누에 왔다는 아저씨는 경기 결과 3:1에 내기를 걸었다고 웃음지었다. 전반 11분 쿠티뉴의 골이 터졌고, 전반 30분 수아레즈의 골이 나오며 2:0으로 전반전이 끝났다. 캄프 누는 희열이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5분, 레알 마드리드의 마르셀로가 골을 넣으며 2:1이 되었고 아쉬워하면서도 점차 아저씨의 내기 결과에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저씨는 내기에 지고 말았다. 수아레즈의 해트트릭과 비달의 골로 5:1이라는 숫자가 완성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열광했다. 사람들과 얼싸안았으며,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어느덧 비가 온다던 하늘에는 노을이 덮여 블라우그라나 색이었다. 그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엘 클라시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전을 일컫고, 꾸레가 만들어온 클럽 그 이상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모두 축구장에서 엉덩이를 꿀렁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