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밤나무의 오만과 나도밤나무의 편견

#23 바르셀로나, 서울, 파리의 이방인

by 들숨날숨
[에펠탑]


서울에서 태어난 철수는 28세의 나이에 파리로의 이민을 선언한다. 철수는 분명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서울에서 나왔으며 파리에서는 1년 산 게 전부다. 모두들 철수가 겉멋이 들어 그렇다고 한다. 일종의 서양 사대주의랄까?

"철수가 어려서 그래~. 1년 살아본 것 가지고 이민이라니.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데."


하지만 철수, 파리에서 거주한 1년을 제외한 만 25.5년을 서울에서 살아왔다.

철수는 과연 파리가 좋아서 가는 것일까?

사람이 떠날 때는 한 곳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어떤 한 곳에서 벗어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에스텔은 식당에 들어선다. "Buenos días"

"Hello. May I help you?"

아주 유창한 스페인어에 돌아온 것은 영어다. 스페인어 메뉴판과 영어 메뉴판 사이 에스텔에게 주어지는 메뉴판은 영어 메뉴판. 하지만 에스텔은 옆자리에 놓인 스페인어 메뉴판을 가져온다. 음식을 고른 에스텔은 주문을 스페인어로 이어나간다. 스페인어로의 주문과 영어로의 응대의 우스꽝스러운 반복이 계속된다. 동양인은 스페인 사람에게 스페인어로 말하고, 스페인 사람은 동양인에게 영어로 말하는 것이다. 이 배려 넘치는 상황은 5년째 스페인에서 거주 중인 에스텔에게 꽤나 익숙하다.


밥을 먹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근처에 잠시 앉아 있으니, 손에 카메라를 든 한국 관광객 몇 사람이 말을 건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에스텔은 말 없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서는 피사체의 발 끝을 화면 하단에 놓는다. 비율을 최대한 살린 사진에 관광객은 "고마워요. 역시 한국인이야." 라며 감사 표시를 한다.

에스텔은 "De nada"(별 말씀을요) 라고 답하며 휴대폰을 켠다.

에스텔의 휴대폰 속엔 3개월 전 온 '미영아. 잘 지내지?' 라는 메시지가 안읽은 채 부유하고 있다.


Aesculus_hippocastanum_fruit.jpg [나도밤나무 열매 - Solipsist CC BY-SA 2.0]

'투둑'

밤이 발 앞에 굴러 떨어졌다. "이런 데 밤나무가 있었나?"

생긴 건 밤같은데, 이리저리 살펴볼 수록 밤이 아니다. 밤송이 특유의 긴 가시가 돋아있지도 않고, 너무 둥그렇고 너무 반질반질하달까. 밤처럼 생겼는데, 밤은 아니다. 이 친구는 나도밤나무 열매다. 한국에는 '너도'와 '나도'로 시작하는 식물들이 있다. 실은 '너도', '나도'가 붙은 식물들은 본디 그 이름을 타고난 식물들과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 속에서도 '너도'와 '나도'는 구별지어진다.


이리저리 살펴보아 비교적 비슷하면 "그래. 너도 밤나무야."라고 하면서 타인의 인정을 부여한다. 조금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식물에겐 타인의 인정이 배제되고, "나도 밤나무야!"라는 자기주장만이 남는다. 결론적으로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의 친척 정도는 되나,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는 관계가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이곳에서 물흐르듯 살아왔다. 하면 우리는 아마 타고나길, 또는 길러지길, 비슷할 것이다.

다르게 생겼거나, 나댄다거나, 성적지향이 다르거나...

너도밤나무와 나도밤나무의 줄타기는 계속된다.


아.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본디 어떤 생물보다 못하면 '개-'를 붙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