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와 파리의 뒷골목 사전

#26 너로금 배운 언어와 세계

by 들숨날숨
누군가 할루~미라고 인사하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후무스? 라고 묻고
샤와르마! 라고 같이 외치면서 깔깔댈래.

바르셀로나는 Hola! 파리는 Bonjour로만 이야기할 줄 알았던 건 아주 따분한 착각이었다. 조금 더 친해진 사람들을 위해 숨겨놓은 뒷골목은 우리의 친분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첫 번째는 호기심에 두 번째는 반가움에 세 번째는 정이 되어 우리는 새로운 언어로 말했고, 뒷골목 너머 더 넓은 세계를 꿈꾸게 했다.


Halloumi [할루미] : 할루~미 모르는 사이여도 인사부터

언제부터 알게 된 사이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할루미가 꼭 그렇다. 분명 모르던 사이였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할루미~ 라고 인사하길래 얼결에 같이 인사를 해버렸다. 이후에는 할루미를 뒷골목에서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할루미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이미 악수하곤 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파리에서도, 독일에서도. 그런 할루미는 중동에서 지중해를 거쳐왔다고 한다. 양젖 또는 염소젖으로 만든 할루미를 구워 되너 케밥 사이에 껴 먹으면 뽀득! 고소한 맛이 이를 데가 없다. 할루미는 흔하지만 또 흔치 않은 편이다. 안면을 튼 이래로 할루미를 마주치는 그 순간순간이 큰 행운이었다.

[할루미 치즈] Pixabay

Hummus [후무스] : 후무스? 앞으로 나를 모르긴 어려울 거야.

그에게 더 이상 이름을 물을 일은 없었다. 바르셀로나 길바닥에서 독일 친구가 바게트에 노란 소스를 바르고 있었다. 머스터드는 분명 아니었다. 보다 되직했고 보다 싱그러운 빛깔이었다. 친구가 직접 만들었다며, 바게트에 열심히 발라 입에 넣어준 그때. "후무스"였다. 한 번 이름을 안 뒤로는 잊을 수 없달까. 담백하고 고소한데, 이게 병아리콩이란다. 계속 손이 가는 바람에, 주변에 있던 후무스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후무스] Pixabay

Falafel [팔라펠] : 팔랑팔랑 손을 잡고 따라간 팔라펠

프랑스 땅을 처음 밟은 그날, 파리 유학생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팔라펠 집이었다. 양파 수프, 달팽이 요리가 아닌 팔라펠이 파리 첫 저녁 식사로 선정된 것이다. 팔라펠이 뭔지도 몰랐지만, 여기 라스 뒤 팔라펠(L'As Du Fallafel)은 없어서 못먹는다는 말에 홀렸다. 그리고 정말 없어서 못 먹었다. 번화가인 마레 지구에서 줄이 가장 긴 그 집은 재료 소진이었고, 결국 차선책인 양파 수프를 먹게 됐다. 초겨울의 입김과 함께, 양파수프 뒷맛으로 먹지도 않은 팔라펠이 아른거렸다. 정확히 1년 뒤 파리에 다시 와서 팔라펠 집을 갔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마음으로 일찍 도착했지만 20분을 기다렸다. 20.1분 뒤에는 바삭한 튀김을 입에 물었다. 그 튀김에선 굉장히 담백한 고기가 씹혔다. 아니 병아리콩이었다. 팔라펠은 병아리콩을 다져 양파, 고수 등과 함께 동그랗게 튀긴 튀김이었다. 그 위로 요거트 소스와 하리사 소스(아프리카 칠리소스)를 흩뿌려 양배추, 가지 등과 함께 한 입에 왕 넣으면 뜨거우면서도 차갑고, 담백하다가 매콤하고, 기름지다가도 깔끔하다. 병아리콩 세계관을 믿게 된 팔라펠.

L'As Du Fallafel의 팔라펠

Shawarma [샤와르마] : 샤와르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오후 8시에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바르셀로나, 밤 12시의 거리는 누구보다 생기가 가득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달이 중천에 떠 있는 밤 10시는 집에서 나오기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N Bus를 타고 우리의 아지트인 그라시아 광장으로 향했다. 맥주 한 잔을 하면서 거리를 홀짝홀짝 돌아다니다가 노릇노릇한 냄새를 맡고 찾아간 곳이 Musta였다. 둥그런 달을 닮은 피타 빵 사이로 지글지글한 소고기 또는 양고기를 왈칵 부어버린 샤와르마는 배를 기름으로 포근하게 덮어준다. 우리의 밤은 짧으니깐 걷고 또 걸었다. 달이 질 때까지

[Musta의 샤와르마] Image by Rafael Maggion


할루미, 후무스, 팔라펠, 샤와르마, 알면 알 수록 점차 새로운 언어들은 늘어갔고, 뒷골목은 들어갈 수록 골목골목 깊어졌다. 그렇게 길을 잃은 척 뒷골목에서 한 없이 걷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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