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을 쓰면서 내 감정과 내 생각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환산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톡으로 모든 공적인일과 사적인 일을 시작하면서 업무적으로도 업무적이지 않은 것이라도 톡으로 문자를 보내고 그 문자에 대한 확인의 답신을 톡으로 받지 못하면 습관적으로 상대방이 문자를 확인했는지를 재 점검하는 일을 하면서 상대방이 어떤 감정으로 어떤 생각으로 내가 톡으로 보낸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을까에 대한 조바심으로 벗어나기 위해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능동적으로 어떠한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하기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방법들을 문자소통의 시대에서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전엔 상대방이 나의 문자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에 대한 확인을 할 수 없었기에 보내 놓고 다른 일들을 하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어느새 문자를 상대방이 읽었는지에 대한 흔적들을 알게 되는 기능들을 통해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통째로 움직이며 상대방의 문자 답에 촉을 귀 기울게 되니 생각보다 마음과 몸이 많이 피곤하고 힘든 부분들이 생기고 있었다.
그 이전에 상대방이 내 문자를 확인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오히려 내 삶에는 훨씬 더 마음이 편했다는 것을 알았다. 읽고 보고도 답을 안 하는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없어 애가 타기도 하고 긴장도 되기도 하고 조바심이 가끔씩 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보다는 그 이전에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상대방의 흔적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 속이 정말 편했구나 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문자를 보고도 읽고도 답을 바로 하지 않는 경우도 무수히 많으며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 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처음엔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무엇인가 서운하게 한 것이 있나
내가 무엇을 마음에 들지 않게 한 것이 있나
내가 무엇을 실수한 게 있나
내가 다른 그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건가
사람과의 소통이 오히려 더 많이 불편해지고 어려워진 거 같다.
전화기만 있을 때엔 전화로 불러내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조금은 구식이었던 그 시대가 사람과의 소통을 상대방의 마음도 내 마음도 이야기를 하고 얼굴을 마주 보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문자 하나로 내 생각과 내 마음도 상대방의 생각과 상대방의 마음도 마법처럼 알아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나는 주로 상대방에게 마음 아픈 외면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외면을 혼자 스스로 애써 이겨가면서 이유도 모른 채 그 시간들을 견뎌가야 한다.
톡을 통해 상대방과 무수히 많은 소통을 하면서 어느새 나는 왜......라는 감정과 왜.....라는 질문을 다시 묻지 않기로 했다.
왜.....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톡을 보낼 때 내 마음과 감정이 혹시나 잘못 판단하에 묻게 되는 상황을 되도록이면 피하기 위해서이며 왜.....라는 질문을 다시 물었을 때 상대방이 혹시나 지금까지 일부러 외면하고 무시했다면 그 질문을 함으로써 애써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회상시키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다.
사람들과 소통은 문자로 다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지금 이 시대는 문자로 모든 것을 소통하며 상대방과 내 마음의 진실된 마음과 진위의 여부에 관계없이 결론이 지어진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소통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리고 그 소통을 글로서만 다 풀어내려 한다. 문자는 문자일 뿐 그 문자가 사람이 가진 복잡한 미묘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다 읽어내고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톡을 통해 일을 하면서 조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나고 소통하는 자리가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깨닫게 된다.
왜..........라는 말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러나 왜......라고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이 시대의 소통은 왜......라고 묻는 것이 나를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때로는 묻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시간이 흐른 뒤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