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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소멸과 핸드폰

by JHS

모두가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다.

모두가 눈을 서로 마주치진 않는다.

모두의 눈은 핸드폰의 메시지의 알림 확인에 바쁘고

모두의 손은 핸드폰의 스크롤을 움직이기에 바쁘다.


감정은

좋아요를 받는 기쁨으로 만족한다.

감정은

나의 셀카 스크린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며 나의 외모를 만족하는 즐거움으로 살아난다.


5명이 모인 테이블에 그 누구도

서로의 눈을 맞추고 서로의 감정을 느끼며 서로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 있는 또 다른 메신저들과 감정을 반밖에 알 수 없는 문자로 대화하는 시간에 또 다른 감정을 투영할 뿐이다.


살아있는 감정은

그 누군가가 나의 사진을 보고 좋아해 주는 것에 대한 기쁨

핸드폰을 통해 상대방의 눈을 통해 감정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상태의 대화의 연속성에서

추측 어린 감정선과 애매모호한 감정들

보이지 않기에 나의 무심함과 무관심과 진정성 없는 감정들의 표현들만 생존해가고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아주지 않는다

서로를 원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만 감정을 실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한다.


21세는 외로운 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고도의 기술은 인간을 고립시키며

고도의 기술인 핸드폰은 인간의 감정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며

핸드폰과의 감정 교류만을 살아남게 고립시켜 버린다.


사람들은 말한다

외롭다고

그러나 핸드폰을 통한 사람의 관계를 더욱더 지속시킬 뿐

서로가 서로의 눈과 얼굴을 마주 보며

상대방과 나의 감정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핸드폰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감정을 전달받을 뿐이다.

전달하고 전달받는 감정들은

그 감정들이 진실인지 조차 우린 알 수 없다.

기계속에 숨겨져 버린 감정들을 우린 알고 싶어하지 않기에


우리는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들을 스스로 소멸하고 있다.

고도의 핸드폰 기술은 우리의 눈을 귀를 입을 다 막아버리고 있지만


우리는 이 막아버린 감정들을 세상 살기엔 간단하다면서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감정들을 스스로 또한 소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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