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마음이 병들었다.
올해 5월 남편과 함께 런던 살이를 시작하기 전, 싱가포르의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한국에서 몇 개월 놀다 가야지 싶었다. 이제 멀리 떠나면 가족들과의 시간이 더 줄겠구나 싶어서 2월 설날에 맞춰 눈 오는 겨울 한국, 어릴 적 이후 처음 보는 벚꽃 날리는 봄까지 함께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있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오자마자부터 열심히 구직을 했다. 생각보다 지원하는 곳마다 꽤 연락이 와서 몇 차례 인터뷰도 하고 '아 이러다 배우자 비자가 나오기도 전에 일을 먼저 찾는 거 아니야?'라는 걱정도 했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런던에 와서 6월에 정식 비자를 받고서는 구직이 더욱 수월하겠다 싶었다. 또 지원하는 곳마다 연락이 잘 와서 실제 대면 면접을 하러 다니며 '아 곧 출근하겠다' 싶었다.
내가 노린 곳은 모두 이름 있는 대기업. 당연히 될 줄 알았다. 여름휴가 때가 되니 이곳의 인터뷰는 프로세스도 느리고 길기도 했지만 나도 가슴 한편으로 '언제 연락 오냐' 마음 졸이며 유럽의 여름을 즐겼다.
결과는 모두 처참한 낙방. 비록 내가 당연히 될 줄 알았던 곳들은 안 됐지만 9월, 마지막 한 곳의 소식이 남아있었다. 이때도 '아, 여긴 회사는 좋은데 업무는 베스트는 아니니까 좀 다니다가 옮겨야겠다'라는 야무지고 오만한 꿈이 있었다. 그리고선 9월의 중순, 그 회사에서 최종 결과를 전해야 하는 타이밍에 전화가 와 오히려 채용이 잠시 중단되었다는 안내를 들었다. 자꾸 누가 나를 방해하지 않고서야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불안감과 간절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버텨온 내 마음이 서서히 병들어갔다.
일을 하지 않고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랐고 몇 시간씩 잡 서칭을 하다 보면 불안감과 초조함이 올라와 혼자 울었다. 이럴 때를 즐겨야 한다는 남들의 말대로 혼자 갤러리, 박물관을 구경하러 나간 적도 있다. 즐거워야 하는데 마음은 불편했고 혼자 노는 것이 외롭고 재미있지 않았다. 나가는 것 자체가 나에겐 곤욕이었다. 혼자 있는 집, 바깥 어디 하나 마음 편한 곳이 없던 하루였다.
어느 날, 남편은 또 출장에 가있었고 나는 또 집에 혼자였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 상태가 지속되고 이유 없이 계속 눈물이 흘렀다. 우울증이 아니고서야 이게 뭔가 싶었다.
뭐가 이렇게 힘들까, 나는 그저 이 새로운 곳에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이다.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낸 비싼 건강보험료 한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NHS 정신건강 진료를 기다렸다.
*NHS(국민보건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는 영국의 공공 의료 시스템으로, 세금으로 운영되어 거주민에게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