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 Foundation

오늘의 이야기 <이상한 것들의 격리 보고서, SCP 재단>

by 무아


* 웹 매거진 LiiS에 기고 중인 아티클입니다. 원문은 LiiS 웹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이상한 것들의 격리 보고서, SCP 재단>


지난 이야기의 백룸을 아는 사람이라면 SCP 재단에 대해서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탄생한 괴이한 설정 중 이렇게까지 오래 살아남아 정교하게 확장된 세계는 드물다. SCP 재단은 지금도 이상한 존재들을 계속해서 격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SCP 재단은 대체 어떤 곳일까.




비밀 조직을 엿보다

SCP 재단 은 전 세계의 이상 현상을 수집하고 격리하고 연구하는 가상의 초국가적 비밀 조직이다. 처음 접하면 어디선가 유출된 기밀문서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게 몰입의 시작이다. 실제 보고서를 연상시키는 어조, 객관적으로 기술된 이상 존재들의 정보, 체계적인 격리 절차와 보안 등급까지. 모든 요소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수준의 디테일을 갖추고 있다.

이 재단의 핵심 운영 원칙은 세 가지다. 확보(Secure) 격리(Contain) 보호(Protect). 발견된 이상 현상을 확보하고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 격리하며 사회와 개인을 보호한다는 사명이다. 기묘함의 정체를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구체적인 매뉴얼과 기술 문서로 드러내는 덕에 이 세계는 묘하게 사실적인 불안을 만들어낸다. 기묘함의 정체를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구체적인 매뉴얼과 기술 문서로 드러내는 덕에 이 세계는 더욱 사실적인 불안을 만들어낸다.




조각상이랑 눈싸움을 해야 한다고?

SCP 재단의 이야기는 하나의 중심 줄거리가 없다. 오히려 수천 개의 문서가 연결된 데이터베이스에 더 가깝다. 각각의 SCP는 고유의 번호를 가지고 있으며, 대체로 SCP-xxxx 형식으로 명명된다.


그중에서도 SCP-173 *은 SCP 세계관의 기념비적인 존재다. 2007년 한 유저가 ‘움직이는 조각상 ’에 대한 짧은 설정과 함께 업로드한 이 문서는 SCP 재단 위키의 실질적인 1호로 기록된다. 외형은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꽤나 치명적이다.


SCP-173은 관찰자가 시선을 유지하는 동안엔 움직이지 않다가 눈을 떼거나 깜빡이는 순간 순식간에 접근해 목을 꺾는다. 이를 격리하려면 최소 세 명이 필요하고 유지보수 시에는 음성으로 카운트를 맞추며 교대로 시선을 유지한다. (아… 눈도 제대로 못 깜빡이는 직업이라니)


이 설정은 짧고 단순하지만 강력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수천 개의 SCP 문서들이 이 규칙성과 공포 조합을 본뜬 형태로 제작되었다.


*




SCP 재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흠…

SCP 재단은 그저 이상 현상과 물체만을 수집하는 조직일까. 내부를 들여다보면 꽤나 정교한 운영 구조가 존재한다. 격리된 SCP는 객체등급에 따라 위험성과 관리 난이도가 구분되며 세이프, 유클리드, 케테르 등급 외에도 타우미엘이나 아폴리온 같은 확장 등급도 있다.


이런 존재들을 다루는 인원에게는 보안 인가 등급이 부여되며, 1부터 5까지 숫자로 구분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더 많은 기밀 문서나 더 까다로운 SCP 객체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등급이 높은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단은 수많은 인물과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자, 요원, 관리자, 연구원 등이 자신의 전문성과 역할에 따라 특정 SCP의 관리 및 연구에 배정된다. 심지어 특화된 초능력을 가진 인물도 등장하는데, 그 능력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 기초과학부, 기술부, 심리연구부, 언어분석부 같은 부서 외에도 필요한 경우 SCP 대상의 격리와 제거를 전담하는 기동특무부대가 파견될 때도 있다.


이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보안시설이나 영구 격리구역에서 활동하며, 그 위치는 극비로 분류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한국 재단도 마찬가지지만(한국 재단은 바로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글로벌 재단의 중심은 대개 미국, 러시아, 유럽권에 잔재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단단하게 구축된 설정은 SCP가 조직으로서의 현실감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재단 등장과 독자적인 세계

각국의 커뮤니티가 자율적으로 분화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시스템 덕분에 국가별 색이 뚜렷한 하위 세계관이 탄생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SCP 한국 재단이다. 한국의 문화, 역사, 사건, 도시전설을 기반으로 한 SCP들이 독자적으로 생성되고 있는데 읽다 보면 익숙한 포인트가 나온다. 모종의 이유로 세종대왕의 영혼이 깃든 동상(SCP-174-KO), 선조의 시신이라고 믿게끔 인식재해를 일으키는 손수건(SCP-508-KO), 손톱 형태의 SCP를 섭취 후 쥐와 몸이 뒤바뀌는 연구원(SCP-993-KO) 등.


이런 것들은 번역 이상의 작업이다. 한국 독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장소의 특수성, 세대별 기억, 도시 괴담이 SCP의 고유한 설정으로 녹아든 덕분에 독특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SCP를 상상하는 또 다른 방법

SCP 재단의 문서 포맷과 서사 구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 언어가 되었다. 이상한 것을 수집하고 격리하는 상상력의 방식은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반복된다.


미드 <X-파일> 은 정부의 음모, 외계 생명체, 초자연적 사건을 다루며 공포와 진실 사이의 불확실성을 파고드는 정서가 SCP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영화 <맨 인 블랙>은 외계 존재들을 관리하고 은폐하는 비밀 조직이라는 설정에서 SCP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유머와 SF 활극으로 풀어낸 접근은 다르지만, 기이한 존재들을 현실에 녹여내는 방식은 SCP의 근본적 매력과 겹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호러 영화 〈케빈 인 더 우즈〉 다. 지하에서 괴물을 관리하는 비밀 조직, 그리고 격리 시스템 설정은 SCP 재단을 현실화 시켜놓은 듯하다. 특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괴물의 방은 SCP 데이터베이스를 시각화한 듯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야기 격리소

SCP 재단은 기이한 존재를 만들어내면서 그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다루는가에 대한 문화적 실험도 포함한다. 백룸, 도시전설, 미스터리 파일처럼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일관된 형식으로 분류하고 축적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무섭고 웃기고 때로는 슬픈 문서들이 각기 다른 온도로 존재하는 이야기 격리소. 창작의 실험실이자 질서 잡힌 놀이인 그 기록들은 세계 어딘가에 조용히 격리된 채 언젠가 다시 읽히길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백룸 The Backroo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