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을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들

먼로의 <기차>를 다시 읽으며

by 숨은결


1. 시작
청소년기 초반에는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지 않으려고 했다. 다시 읽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재미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정확한 계기가 기억나지 않지만, 고1에 제인 에어를 만나면서 다시 읽기를 자연스럽게 실천했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들과 제인의 재치와 유머 등을 다시 만나는 경험이었다.

이후에 문학작품은 특히 여러 번 다시 읽는 일이 많아졌고, 생각날 때 꺼내서 또 펼쳐보는 식으로 읽어왔다.

2. 경험: 먼로의 <기차>

요즘 네 번째 전자책을 준비하면서 다시 읽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다가 먼로의 <기차>가 목록에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읽었다.

이 작품을 두 번 이상 읽었는데도 그동안 놓친 게 있었음을 자각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인데도 보지 못했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새롭게 내게 울림을 주는 맥락과 행간이 꽤 있었다.

그중 하나를 공유한다. 지난번 글을 쓸 때 내가 본 잭슨은 전쟁 후의 트라우마를 안고 어딘가로 늘 쫓겨 다니는 인물이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번에 내가 만난 잭슨은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완행열차에 탄 마지막 손님이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뛰어내렸다. 지난번에 볼 때는 기차에서 뛰어내려서 쫓긴다고 여겼지만, 오히려 그는 목적지까지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보였다. 혹은 그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우리는 기차를 타고 보통 목적지까지 간다. 여행을 가거나 고향에 가기 위해서. 그 과정에는 설렘과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내 경우는 기차에서의 시간이 다소 답답하고 힘들 때가 꽤 있다. 중간에 내려서 다른 지역에 발을 내딛는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해 본 적도 있다.

3. 연결: 세부사항

제임스 우드를 만난 후에, 나는 내가 무엇을 세세하게 주의를 기울여 보는가를 생각하곤 한다. 또 이런 다시 읽기는 세부사항과 연결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읽을 때마다 세부사항을 발견하게 된다. 세부사항은 언제나 누군가의 것이라고 한다. 텍스트 세상에서는 그것이 주인공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주변 인물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그런 장면을 포함한 상황에 대한 세부사항일 수도.

그렇게 세부사항을 발견하게 되면, 또 다른 세상과 연결된다. 오늘 아침 내가 본 풍경이나, 또 다른 텍스트에서 만난 어떤 장면이라든가, 혹은 그날 만난 사람을 통해서 보이는 것들이 쌓인다.

4. 열린 끝

결국 다시 읽기는 텍스트를 새롭게 만나는 행위인 동시에 나를 바꾸는 과정이다. 다시 읽을 때 텍스트는 숨겨두었던 것을 살짝 열린 틈 사이로 보라고 손짓한다. 읽는 나를 환영하는 몸짓이다.

그래서 텍스트는 열린 끝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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