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을 만나다
그날 나는 노란색의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이었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를 만난 날은, 내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 괴롭게 보낸 하루였다. 하던 프로젝트가 순조롭다고 생각하던 찰나, 문제가 생겼다. 그걸 수습하느라 친구와의 약속에 꽤 늦어버린 나는,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음에도 욕을 먹었고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려고 카페를 나서자, 어디서 몰려왔는지도 모를 비가 억수로 쏟아붓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노란색 예수님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큰 길가의 쇼윈도에 고갱의 작품인 노란색 예수님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았지만 투닥투닥 큰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는데, 고갱의 그림에 시선을 뺏긴 나는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 노란색 빛이 너무나 따뜻했다. 분명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받았겠지만, 전혀 다른 색으로 칠해진 예수의 모습은 이전과 달리 내게 온기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있었던 힘든 일들이 머릿속을 휙 스쳐갔다. 질책받고 불쾌함을 내리받기만 하던 내 마음은 혼탁한 검은색으로 가득한 어두컴컴함 속에 한참 동안 잠겨 있었다. 그런데 칠흑 같던 그곳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조금씩 내 몸도, 더불어 내 마음도 활기를 되찾는 듯 느꼈다.
고갱이 어떤 이유로 저 그림을 그렸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또 예수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들의 결합이 낯선 타인인 내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비는 여전히 퍼부었지만, 그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길은 노란색 빛으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