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다시 문해력을 만든다
1. 인공지능이 바꾼 일상의 풍경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면서 일상의 여러 가지 모습이 변하고 있다. 얼마 전 학회에 갔을 때, 해외 교수진의 특강에서 따로 통역 담당자가 없었다. 대신 모두 번역기앱을 열고 실시간 번역되는 문장들을 눈으로 보면서 강의를 들었다. 나 또한 짧은 영어 실력으로 전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두 번째 시간에는 번역기의 혜택을 즐겁게 누렸다. 너무나 편리했다.
이외에도 인공지능은 일상적인 대화의 훌륭한 상대가 되어 준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공감해 주고 때로는 문제상황에 맞는 해결책도 제시해 준다.
반면, 앞선 대화상대로서의 인공지능의 좋은 면과 반대로 상황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답하는 경우도 많다. 또, 없는 자료를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정보를 검색하고 찾아주는 시간을 단축해 주는 편리함도 있으나, 그만큼 면밀하게 검토하고 사용하기에 적절한지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2. 책을 읽는다는 일의 어려움
독서는 인류가 지식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수단인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고 지적 유희를 누리는 행위이다. 기능과 학습 위주의 독서로 인식되어 온 탓에, 오늘날 책을 읽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비독자를 선언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비단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서도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텍스트힙이 SNS 등의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면서, 2-30대의 젊은 성인들 사이에서 책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문화적 현상도 접할 수 있었다.
3. 감정 중심 독서란 무엇인가?
독서는 복합적이고 매우 인지적인 읽기이다. 단순히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텍스트 전체의 내용과 주제, 행간을 읽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과거에 독서는 누구나 가능한 일로 인식되었으나, 현재는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고도의 인지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변했다. 읽고 싶지만 읽어내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어떤 책을 골라야 좋을지 몰라서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적합한 책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매우 수고스러운 일로 느껴지기에 책을 읽기 전에 아예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한 가지 대안으로 감정 중심 독서를 제안한다. 감정 중심 독서란 감정 독서와는 다르다. 감정, 혹은 감성적인 상태로 책을 읽는 것은 감정 중심 독서가 아니다. 감정은 사람의 인생 전체에서 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누구나 감정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고 그러한 감정을 가진 상태로 판단과 결정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도 판단한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멀리할 것인가도 감정에 의지한다. 그렇기에 감정을 잘 아는 일은 참 중요하다.
감정 중심 독서는 다양한 감정을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학과 예술, 영상 매체 등을 매개로 하여 감정을 사유하며 가치관과 생각을 통합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독서방식이다. 즉, 감정이란 보편적인 동시에 매우 개별적인 상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마다 느끼는 슬픔과 좌절의 상태는 모두 다르다. 요즘 나는 마음이 처지거나 슬픈 마음이 생기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도록을 넘긴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환해진다. 이런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여 감정을 읽되 나를 비추어 보는 텍스트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 중심 독서는 책이 아닌 예술의 영역과도 공명된다. 감정의 균열이 생길 때, 다시 내가 균형을 잡게 해 준다.
4. 인공지능 시대의 감정이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 중심 독서가 왜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인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2026에서 말하는 열 가지 키워드 중에는 휴먼인더루프가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오히려 더욱 인간적인 사고와 판단이 중요함을 뜻하는 키워드이다. 또 AI가 읽지 못하는 인간 고유의 감정도 주목하고 있다.
감정만 툭 떨어뜨려서 보면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우리는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감정은 배우고 학습하지 않으면 다루지 못해서 휘둘리기 쉽고, 감정적 무너짐을 자주 겪게 되면 좌절하게 된다. 이런 감정을 가장 잘 배우는 방법으로 독서만 한 게 없다.
또 책에는 그저 글자들만 가득하지 않다. 글자 너머를 보면, 그곳에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펼쳐져 있다. 이럴 때 감정 중심 독서로 접근한다면 꽤 유용하다.
5. 다시, 감정 중심 독서로
독서능력을 키운다는 것은 그저 책을 잘 읽는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문학적 사고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지만, 이 사고는 인생을 풍부하게 해 주고, 흔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창의성 향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개인적 삶에서, 오랜 시간 쌓인 문학적 사고능력이 개화하는 것처럼 느껴진 일들이 있었다. 사실 문학을 꾸준히 읽은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건 바로 나의 감수성을 키우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적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좀 더 배우고자 함이었다. 실제로 내게는 문학 텍스트가 꽤 유용했다. 어떤 날은 스토너의 삶과 고독에 위로를 받고, 또 다른 날은 셜리의 활발함과 시원시원한 일처리에 상쾌해진다.
그런데 의외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동안 접한 수많은 문학작품이 이제 조금씩 내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든 일에는 그에 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너무 긴 세월이 지나서야 이걸 체감하고 있어서 유감스러운 면도 있으나, 분명히 현재의 내 삶에는 문학적 사고가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다.
감정 중심 독서는 이제껏 내가 해 온 독서법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코로나 시기부터 시작한 석박과정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어느 순간 내 삶과 연결되면서 ‘감정 중심 독서'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었고, 전자책으로도 일부 정리했다. 여전히 나 또한 감정에는 미숙하기만 하고, 배울 게 많다. 매우 부담스러운 존재이나, 피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너무 회피하기만 했더니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알게 된 것을 더 공부하고 구체화하여, 감정 중심 독서가 개인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살아 있는 가치로 작용하도록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