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를 믿을까, 나를 믿을까?
-경험의 멸종 5장을 읽고-
스트레스받을 때 맥박수가 높아진다. 이걸 측정하기 위해서 워치를 가능하면 착용한다. 이전에 워치에서 맥박을 잴 수 있다고 해서, 버전을 업그레이드해서 새로 구입했었다. 때로 워치와 내 맥박수는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평온한데 맥박은 증가하고 있어서 당황스럽다. 또 내 심장이 빨리 뛴다고 느꼈는데 정작 워치에서 보이는 숫자는 잠잠하기 그지없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때 나는 내 몸의 감각을 믿어야 할까, 아니면 워치의 데이터를 더 신뢰해야 할까?
책에서 말한 ‘감정의 아웃소싱'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데이터로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기술에 의존한다는 의미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먼저 나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작년엔가 감정을 기록하는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감정 상태를 체크해 보려고 했던 시도도 생각났다. 앱을 사용해서 기록해 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고, 며칠 못 가서 앱은 삭제했고 원점이었다.
기술자들은 끊임없이 기술을 향상해서 사람들의 감정 상태와 변화를 체크해서 이를 수익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도 내 감정을 단순화해서 설명해 보고 싶어 하는데, 이렇게 하면 합리적일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정당성과 타당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워치와 같은 기술력에 기꺼이 내 몸의 데이터를 쉬지 않고 전송하기 위해 애쓴다. 어떻게 하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쉽게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까?
이 챕터 마지막에서 저자는 우리가 뒤섞인 감정을 좋아한다는 짧은 문장으로 결론을 맺었다. 어제 일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나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평소에 친구든 누구에게든 전화나 연락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용건이 있을 때야 비로소 전화하는 유형이다. 그런데 어제 짧은 시간 혹은 그보다 살짝 긴 시간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깨달은 점이 있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는 것. 좋았다는 말에는 좀 더 다른 층위의 감정이 섞여 있었던 것일지 이 글을 보고 생각했다.
대체로 말 그대로 좋았다는 감정이 많았다. 또한 그 속에는 굳이 일이 없으면 전화하지 않는 게 좋지만은 않다는 나 자신의 융통성 없음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별거 아닌 짧은 통화에도 가끔은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기쁘다는 감정만 느낀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몇 시간 내내 오히려 마음이 집중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분석이 맞는지 의문이나, 결국 인간의 감정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굳이 감정을 단순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감정을 아웃소싱한다는 건, 내 감정을 직접 느끼고 해석하기보다, 기술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해 감정을 판단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맥박수가 증가하는 게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기곤 하는데, 비단 그 이유만 있는 게 아님에도, 무의식적으로 지금 스트레스받는 중인가?라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샅샅이 파헤치려고 하기보다, 일단 수용하고 그다음에 감정의 발생 전후로 나 자신이 어떠했는지를 돌아보는 게 차라리 나은 대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매번 발생한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결국 기술은 보조적 수단일 뿐, 나를 이해하는 건 여전히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